고종 황제와 커피, 한 잔의 음료가 연 근대의 창(feat. 커피 독살설)

황제의 잔에 담긴 검은 음료 

오늘날 한국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커피 소비국입니다. 출근길에 들르는 카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테이크아웃 컵은 한국인의 일상이 되었죠. 하지만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마시는 이 커피가 처음 조선 땅에 들어왔을 때는 충격과 호기심 그 자체였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첫 만남이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의 손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한 황제의 삶과 근대 조선의 운명을 비추는 작은 창이었습니다. 



1. 고종과 커피의 첫 만남 – 아관파천의 이야기 

1896년, 조선은 격랑 속에 있었습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영향력이 급격히 커졌고, 조선의 황실은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이때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했습니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낯선 음료가 황제의 손에 올려졌습니다. 검은색 액체, 독특한 향, 쌉싸래한 맛. 그것이 바로 커피였습니다. 고종은 처음에는 생소하게 여겼지만 곧 매력을 느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커피는 서양 외교관들과 지식인들이 즐기던 신문물이었고, 고종이 이를 접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기호를 넘어 정치적 상징을 지녔습니다. 

아관파천 시절, 외교관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황제의 모습은 조선이 새로운 시대의 문을 두드리는 장면처럼 비쳐집니다.

아관파천-장소,-러시아-공사관-모습(출처:나무위키)
아관파천 장소, 러시아 공사관 모습(출처:나무위키)



2. 궁궐 안의 커피 – 황실 다실의 등장

고종은 이후에도 커피를 즐겼습니다. 경복궁과 덕수궁에는 서양식 다실이 마련되었고, 황제는 커피를 마시며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외국 사절을 접견했습니다. 은제 컵과 서양식 다기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물건이었으며, 이를 통해 조선 황실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덕수궁 정관헌(靜觀軒)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곳은 고종이 외국 사절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담화를 나누던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관헌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근대 외교의 무대이자 커피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된 공간이었습니다. 

고종 황제


3. 커피와 정치 – 암살 음모설의 그림자 

커피와 관련된 고종의 일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암살 음모설입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고종은 일본 세력에 의해 커피를 마시던 중 독살될 뻔했다고 전해집니다. “커피에 타진 약이 황제를 위협했다”는 이 이야기는 당시 국제 정세와 제국주의 열강의 압박속에서 충분히 가능했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 일화는 커피가 단순한 신문물이 아니라,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 속에서 정치적 긴장과 불안을 상징하는 매개체였음을 잘 보여줍니다. 황제가 마신 한 잔의 커피는 ‘근대화의 상징’이자 ‘암살의 위협’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죠. 

영화-가비,-고종의-커피-독살설을-배경으로-한다.
영화 가비, 고종의 커피 독살설을 배경으로 한다.


커피 독살설을 보도한 1898.9.13.자 독립신문(출처:경향신문)


커피 독살설에 대해 일본공사가 본국 일본외무대신에게 보고한 정보보고
(국사편찬위 자료, 출처:경향신문) 



4. 근대 도시와 커피 – 다방 문화의 태동 

고종 이후, 커피는 점차 조선 사회에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 초 경성(서울)에는 서양식 다방이 등장했고, 지식인과 예술가, 개화파 청년들이 모여 토론을 벌이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다방인 ‘카페 앙그라’ 같은 곳에서는 시인, 언론인, 정치인들이 모여 신문물을 이야기하며 나라의 미래를 고민했습니다. 다방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근대적 사교의 장이자 문화와 사상의 교류 공간으로 기능했습니다.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험한 커피가 이제는 도시 대중의 삶 속으로 스며든 것이죠.



5. 전통과 신문물의 충돌 – 차 문화와 커피의 공존 

하지만 이 시기에도 전통적인 차 문화는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조선 사회에서는 제례와 예절 속에서 차가 중요한 역할을 했고, 서민들은 보리차, 결명자차, 대추차 같은 생활 속 음료를 즐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와 개화 지식인들은 커피를 신문물의 상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처럼 

차와 커피의 공존은 당시 조선 사회가 전통과 근대화 사이에서 어떤 갈등과 변화를 겪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6. 오늘날의 의미 – 황제의 커피가 남긴 유산 

오늘날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커피 소비국이 되었습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바로 고종 황제가 있습니다. 

고종이 커피를 마셨던 일화는 단순한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조선이 세계와 맞닿고 근대화를 경험하는 과정 속에서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고종 황제의 커피는 한 잔의 음료가 시대를 바꾸는 힘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면이었죠. 



한 잔의 커피가 열어준 근대의 창 

고종 황제와 커피의 이야기는 작은 일화 같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시대의 전환이 담겨 있습니다. 궁궐 안 다실에서 은제 컵에 담긴 커피는 단순한 신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조선이 근대 세계와 만나는 순간이었고, 황제가 선택한 작은 ‘문명의 창’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무심코 마시는 한 잔의 커피에는 고종이 느꼈던 놀라움과 시대적 갈등이 함께 담겨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오늘 커피를 마시며 어떤 생각을 떠올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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