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아침, 예고 없는 징조
기원후 79년 8월 24일 아침, 폼페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활기를 띠고 있었습니다. 상인들은 시장에서 포도주와 빵을 팔고, 귀족들은 대리석 저택의 정원에서 아침을 즐겼습니다. 원형극장에서는 연극 준비가 한창이었고, 목욕탕에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누구도 그날이 ‘마지막 날’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지요.
하지만 징조는 이미 있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지진이 잦았고, 우물의 수위가 이상하게 변동했습니다. 심지어 일부 가축들은 이유 없이 불안하게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폼페이 사람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지진은 이탈리아 남부에서 흔한 일이었고, 베수비오산은 오래전부터 고요했기 때문이죠.
1. 하늘을 찢은 첫 폭발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대지는 돌연 요동쳤습니다. 그리고 베수비오산 정상에서 천둥 같은 폭발음과 함께 하늘로 치솟는 거대한 화산재 기둥이 솟아올랐습니다. 로마 역사가 플리니우스는 이를 ‘거대한 소나무 모양의 기둥’이라고 묘사했습니다. 하늘은 순식간에 검게 물들었고, 햇빛은 사라졌습니다.
화산재가 눈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지붕 위에는 회색 재가 쌓였고, 사람들은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도망쳤습니다. 그 순간부터 도시는 이미 ‘종말의 그림자’에 덮인 셈이었습니다.
2. 공포와 혼란 속의 사람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가족과 함께 도시를 빠져나가기 위해 해변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바다는 이미 화산재로 뒤덮여 배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두꺼운 돌담 속에 숨어 재앙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화산재는 시간과 함께 무겁게 쌓여 지붕을 무너뜨렸습니다.
한 귀족은 은과 금을 자루에 담아 탈출하려 했지만, 결국 무거운 보물 때문에 속도를 늦추다 매몰되었다는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임산부가 남편의 손을 꼭 붙잡고 벗어나려 했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린 흔적이 남았습니다. 이들의 절박한 몸짓은 화산재가 식은 뒤 ‘인간 석상’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폼페이 인간석상1(출처:뉴시스,조선일보) |
폼페이 인간석상2(출처:이투데이, AP연합뉴스) |
3. 죽음의 화산재와 화쇄류
밤이 되자 상황은 더욱 끔찍해졌습니다. 베수비오산은 마침내 치명적인 화쇄류, 즉 뜨겁고 빠른 화산가스를 뿜어냈습니다. 시속 100km에 달하는 이 불덩어리 구름은 숨 쉴 틈도 주지 않은 채 도시를 휩쓸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단 몇 분 만에 수천 명이 한꺼번에 질식사했다고 합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사람들의 마지막 표정과 자세는 화산재 속에 완벽하게 보존되었습니다.
4. 잿더미 속에 묻힌 도시
폼페이는 하루 만에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수십만 톤의 화산재와 돌이 도시 전체를 뒤덮어 지도에서 지워진 것이지요. 살아남은 이들은 도시가 사라진 자리를 차마 돌아보지 못했고, 세월은 흘러 폼페이는 전설 속의 도시로 잊혀졌습니다.
그러나 18세기, 우연한 발굴이 이루어지면서 도시는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고대인의 삶이 그대로 멈춰 있는 듯한 거리, 빵이 아직 화덕에 남아 있는 집, 사랑하는 이를 껴안은 채 굳어버린 인체 석상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폼페이는 ‘고대의 시간 캡슐’이 되었던 것입니다.
폼페이 모습 1 |
폼페이 모습 2 |
폼페이 모습 3(출처:동아일보) |
오늘날의 교훈
폼페이의 비극은 단순히 한 도시의 멸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동시에 그 삶의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줍니다. 지금 우리는 폼페이 유적을 보며 고대인의 웃음과 눈물, 사랑과 두려움을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폼페이는 말합니다. “어떤 문명도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남긴 흔적은 미래 세대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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