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년대에 이어진 피아노의 발전은 베토벤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피아노는 수많은 현이 있고, 그 아래에 둥그런 모양의 해머가 현을 두드려 소리를 만드는 구조입니다. 현을 퉁겨서 소리를 내는 챔발로나 클라비코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이죠. 이 타현악기, 즉 현을 치는 악기로서의 피아노는 1700년대 후반 독일의 한 제작자가 챔발로와 비슷한 외형에 해머를 달아 만든 것이 시초입니다. 베토벤이 20대였을 무렵의 일이니, 그는 피아노가 막 세상에 나올 때부터 그 발전 과정을 함께 걸어온 셈입니다.
피아노가 발전하면서 베토벤은 오케스트라 전체의 소리를 건반 하나로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페달을 다양하게 실험하고, 88개 건반을 최대한 넓게 활용하는 방향으로 곡을 써나갔습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피아노 소나타 21번, 작품번호 53, 발트슈타인(Waldstein)입니다.
| 베토벤(1170-1827) |
발트슈타인 — 후원자의 이름을 단 소나타
발트슈타인은 당시 귀족 출신의 음악 애호가이자 베토벤의 후원자였습니다. 악보 원본 제목 바로 아래에 그에게 헌정했다는 표기가 남아 있습니다. 베토벤이 직접 헌정한 곡입니다.
악보에는 '알레그로 콘 브리오'라는 나타냄말이 적혀 있습니다. 앞서도 나온 표현인데, 콘 브리오는 활기차게라는 뜻입니다. 빠르고 활기차고 생기 있는 느낌으로 시작하라는 지시입니다. 곡의 첫 음부터 다이내믹하게 치고 들어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발트슈타인 백작의 성격이 워낙 활기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하니, 베토벤이 그 인물을 떠올리며 이런 나타냄말을 붙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왼손이 쉬지 않는다 — 연타의 어려움
이 곡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왼손입니다. 왼손은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하나의 코드를 연타로 이어갑니다. 같은 음을 반복해서 치는 걸 연타라고 하는데, 테크닉적으로 단순해 보여도 실제로는 만만치 않습니다. 일정한 힘과 간격으로 계속 치는 게 생각보다 어렵고, 아무리 집중해도 수많은 음 사이 어딘가에서 한두 개가 살짝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 한두 음 때문에 연주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곡입니다.
이 왼손 연타가 강하냐 역동적이냐에 따라 곡 전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처음 부분의 템포와 발트슈타인 백작의 성격을 연결해보면, 베토벤이 이 곡을 얼마나 활력 넘치게 설계했는지 느껴집니다.
2악장 아다지오 몰토 — 느리게 가는 것의 어려움
2악장의 빠르기는 '아다지오 몰토(Adagio molto)'입니다. 아다지오는 느리게, 몰토는 조금 더라는 뜻이니, 아다지오보다 한층 더 천천히 연주하라는 지시입니다. 1악장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느린 템포를 연주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듭니다. 겉으로는 정적으로 보여도 속으로는 1초를 4등분에서 8등분까지 쪼개며 박자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템포가 흐트러지거나 음 사이의 여백을 정확하게 채울 수가 없습니다.
2악장에서 3악장으로 — 아타카 수비토 론도
2악장과 3악장은 거의 이어집니다. 베토벤이 2악장 끝에서 3악장으로 곧장 넘어가도록 설계했습니다. 악보에는 2악장 아래 '아타카 수비토 론도(Attacca subito rondo)'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타카는 바로 연결하라는 뜻, 수비토는 즉시 갑자기라는 뜻입니다. 즉 2악장이 끝나는 순간 쉬지 말고 바로 3악장 론도로 돌입하라는 지시입니다.
템포도, 화음도,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지는데 쉬는 틈도 없이 갑자기 바뀌는 겁니다. 연주자도 듣는 사람도 이쯤에서 무언가 바뀌겠다고 예측할 수 없도록 설계된 구조입니다. 베토벤 특유의 장난스러운 면이 잘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3악장 — 페달로 완성되는 음향
3악장의 빠르기는 '알레그레토 모데라토(Allegretto moderato)'입니다. 알레그로보다 조금 느리게, 모데라토는 보통 빠르기니까 전체적으로 보통 빠른 느낌입니다. 그리고 이 악장에는 페달을 길게 밟으라는 표기가 있습니다.
당시 피아노 제작자들은 새 피아노가 나올 때마다 베토벤에게 먼저 보여줬다고 합니다. 베토벤은 그 피아노로 페달 기능을 시험했고, 이 시기에 현대 피아노가 거의 완성됐다고 합니다. 발트슈타인 소나타의 3악장에서 페달을 16마디까지 지속시키는 악보를 쓴 건 그 기능을 청중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던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베토벤의 이 페달 실험은 후에 드뷔시, 라벨 같은 인상주의 음악가들이 페달로 음향을 만드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200년 앞서 먼저 해낸 것이죠.
3악장 끝 — 글리산도로 마무리
3악장의 끝부분은 글리산도(Glissando)로 마무리됩니다. 글리산도는 높이가 다른 두 음을 미끄러지듯 연결하는 기법입니다. 이 곡에서는 그 글리산도를 옥타브로 내려옵니다. 손이 어느 정도 크고 손가락이 튼튼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기법인데, 무리하면 손이 건반에 걸려 다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피아노 건반이 당시보다 무거워졌기 때문에, 음악학자들 사이에서 이 글리산도를 원보대로 연주하는 게 맞느냐는 논란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베토벤이 이 기법을 통해 피아노라는 악기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려 했다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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