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역사] 베토벤 is rock — 후기 소나타가 품은 저항 정신

베토벤의 32개 소나타 중 마지막 5곡을 후기 소나타라고 부릅니다. 음악적으로 난해하고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데다, 음악학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엇갈리는 까다로운 곡들입니다. 그런데 이 곡들 안에는 베토벤 특유의 장난기가 군데군데 숨어 있습니다. 

베토벤을 가리켜 'Beethoven is rock'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시에 록이라는 장르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베토벤은 록이 가진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저항 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승들에게 배운 고전적인 틀을 간직하면서도 어느 시점부터는 그 틀을 스스로 밀어내며 실험적인 곡을 써나갔습니다. 그 결과물이 후기 소나타입니다. 

루드비히-반-베토벤
루드비히 반 베토벤




베토벤 악보의 나타냄말 — 지키라는 건지 느끼라는 건지 

베토벤 음악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가 악보에 빼곡하게 적힌 나타냄말입니다. 단조나 장조, 빠르기와 무관하게 거의 모든 곡에 '콘 브리오'와 '알레그로' 같은 표현을 달았습니다. 활기차고 생기 있게 치라는 요구입니다. 

베토벤의 나타냄말은 연주자에게 철저하게 지키도록 지시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여기서는 이렇게, 이렇게 하되 너무 이렇게는 하지 마시오"처럼 정확한 지시를 주면서도 여지를 남겨두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연주자들이 해석하기 까다롭습니다. 

피아노 소나타 28번 1악장에는 '알레그레토'와 '마논트로포'라는 나타냄말이 함께 적혀 있습니다. 알레그레토는 알레그로보다 조금 덜 빠르게, 마논트로포는 지나치지 않게 연주하라는 뜻입니다. 거기에 독일어로 '당신의 진실한 감정을 담아서 연주하시오'라는 표현까지 덧붙였습니다. 해석하면 '생기 있게, 그러나 어느 정도만'이 되는데, 도대체 그 어느 정도가 얼마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답답하지만 음악에는 절대적인 답이 없습니다. 수학처럼 딱 떨어지는 정답이 아니라, 구조 안에서 각자 베토벤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음악이니까요. 




2악장 — 행진하는 군인의 박자 

소나타 28번 2악장에는 '렘하프트'와 '마쉬매시그'라는 나타냄말이 나옵니다. 렘하프트는 앞서 설명한 알레그로의 느낌이고, 마쉬매시그는 군악대의 행진곡풍으로 연주하라는 뜻입니다. 나타냄말만 봐도 힘차고 활기차게 발을 구르는 군인들의 행렬이 그려집니다. 

아래에는 '비바체 알라마르치아'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비바체는 조금 빠른 템포, 알라마르치아는 군인이 행진하는 박자라고 보면 됩니다. 행진하는 박자란 모호한 표현인데, 1초를 정확히 둘로 쪼갠 템포입니다. 1초에 두 박이니 1분에 120템포가 됩니다. 이 120템포가 전 세계 어디서나 군인들이 행진할 때 쓰는 속도입니다. 걸음으로 치면 약간 빠르게 걷는 정도입니다. 

베토벤 외에도 다른 작곡가들의 곡에서 '마르치아', '마르치말레'라는 나타냄말이 나오면 같은 템포를 뜻합니다. 개인적으로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박자 표시와 나타냄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베토벤이 어떻게 표현할지 수없이 고민하며 하나하나 기보했을 테니, 그 표시들이 곧 베토벤의 언어입니다. 




3악장 — 그리움이 가득 찬 느린 흐름 

3악장에는 '젠주호트볼'이라는 나타냄말이 등장합니다. 그리움이 가득 찬 느낌으로 느리게 연주하라는 의미입니다. 슈베르트나 슈만, 브람스 같은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곡에도 종종 보이는 표현인데, 베토벤이 이미 이 시기에 쓴 것이 흥미롭습니다.

이 악장에서 베토벤은 첫 번째 페달을 밟으라는 나타냄말 '우나코르다'를 표기했습니다. 피아노에는 페달이 세 개 있는데, 보통 오른쪽 페달을 가장 많이 씁니다. 베토벤이 밟으라고 표기한 첫 번째 페달은 앉았을 때 가장 왼쪽에 있는 페달입니다. 왼쪽 페달을 밟으면 음향이 조금 작아지고, 밟지 않았을 때와는 다른 질감의 소리가 납니다. 베토벤은 몇 번을 쓰고 어디서 떼라는 세밀한 표기는 따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백을 연주자가 채워가는 방식입니다. 




소나타 28번 — 고전과 낭만 사이의 다리 

소나타 28번은 베토벤 후기 소나타의 출발점입니다. 유럽에서는 베토벤을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슈베르트보다 앞선 시대 사람이지만 음악이 추구하는 방향이 달랐습니다. 슈베르트가 고전적인 낭만을 추구했다면, 베토벤의 음악은 낭만적인 고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소나타 28번에서 낭만적인 색채가 두드러집니다. 

처음 들으면 베토벤 음악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낭만적입니다.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들의 곡보다 오히려 더 낭만적이라고 느껴질 만큼입니다. 베토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 음악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곡가입니다. 그 연결의 실마리가 이 소나타 28번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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