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역사]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와 브레다의 항복

예술가의 지위

예술가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창작 욕구에 따라 작품을 만들어내지만 사회에서는 어떤 직업적인 위치를 갖게 됩니다. 어떨 때는 높고, 어떨 때는 낮죠. 이러한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습니다. 만약 사람의 인생에 빗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술가의 지위를 표현한다면 굉장히 다이나믹한 인생 스토리가 나올 것 같습니다. 고대 이집트 의 예술가는 대부분 노예였습니다. 중세에는 길드에 속한 상인과 비슷했습니다. 부와 권력을 지닌 사람들의 조각상이나 벽화를 만들곤 했죠. 이후 예술가의 지위는 르네상스 시대에 오늘처럼 올라왔습니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후원자들이 있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고, 자신의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많이 들어봤던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은 모두 이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가입니다. 또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 모더니즘 시기에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피카소나 고흐처럼 천재의 칭호를 듣는 또 다른 예술가의 전성기가 도래했습니다. 이처럼 예술가들의 사회적 지위는 시대에 따라 달랐고, 사회 요구에 따라 미술의 기능과 역할도 달라졌습니다.

그 사회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예술가의 지위를 바라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유럽에서 예술가가 국가 권력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시기를 살펴볼까 합니다. 그 예술가의 이름은 벨라스케스입니다. 궁정 화가였던 벨라스케스는 국가의 위엄을 세우는 그림을 그렸고, 왕실의 호감을 사서 귀족 작위를 받고 기사 칭호를 얻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자신감이 나타나고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느껴집니다. 오늘은 벨라스케스를 통해 그가 추구한 미술과 삶,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회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벨라스케스의 등장

1623년 펠리프 4세 시대 벨라스케스는 그의 초상화 스케치를 하루 만에 완성했습니다. 이후 왕의 마음에 들었던 벨라스케스는 궁중에서 작업실을 받아 왕의 초상화를 그리고, 궁정의 다양한 작품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왕과 친분이 있던 벨라스케스는 이를 과시하기라고 하듯 작품 속에 산티아고 기사 훈장을 자신의 모습에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미국의 어느 잡지사에서 역사상 최고의 명화를 미술계 인사들에게 물었을 때, 많은 수가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를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 합니다. 미술계에서는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만 대중성은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

이 작품은 대단히 입체적입니다. 작가가 만든 플롯이 무척 복잡하고, 또 구조적입니다. 또 이 작품 속에 여러 등장인물이 보이는데 서로 다른 시선을 보고, 관련 없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바로크 작품에서 보는 듯한 역동적인 스토리, 극적인 요소도 보이지 않죠. 그럼 이제 등장인물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가운데 흰 옷을 입은 소녀가 있습니다. 마르카리타 왕녀인데 함스부르크가의 왕 펠리페 4세의 딸입니다. 이 딸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광대와 젊은 시녀가 어르고 달래는 중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멀리 어두운 벽에 걸려 있는 거울 속에 왕과 왕비의 모습이 보입니다. 젊은 시녀 뒤의 남녀는 가정교사와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고, 출입문에는 궁정을 관리하는 귀족이 서 있습니다. 붓을 들고 있는 화가는 벨라스케스 자신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왜 명쾌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아마 시선이 모두 엇갈리게 배치되어 있어 그러는 것 같습니다. 캔버스는 왕녀가 아닌 관찰자 향해 있고, 벨라스케스도 관찰자에게 시선이 간 듯 합니다. 광대와 시녀도 왕녀에게 시선이 가지 않고 관찰자를 향합니다. 가정교사가 무엇인가 열심히 이야기하는데 오른쪽의 남자는 잘 듣지 않고 정면은 응시합니다. 이걸 아는 순간 관찰자는 작품 속 인물들의 모델이 된 것 같습니다. 

또한 벨라스케스가 공간을 압축해 놓은 방식을 보면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화면 안에 캔버스를 그렸고, 열린 문이 있는 배경에는 빛이 들어오게 하여 방 안에 깊은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벽에 거울을 그려 공간이 앞에 더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평면에 앞쪽 공간과 뒤의 전면을 재구성해 놓은 것이죠. 이렇게 이 작품은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의도를 가지고 재배치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 어린아이 하나가 갑자기 뛰어 들어옵니다. 사진기가 없던 시절이니 당연히 순간 포착의 개념은 없었겠죠. 작가는 자신이 짜 놓은 완벽한 구도에 화면을 흐트리는 요소를 살려 놓은 것이죠.

벨라스케스-라스-메니나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



벨라스케스의 브레다의 항복

이제 벨라스케스의 다른 작품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벨라스케스가 젊은 시절 제작한 브레다의 항복이라는 작품인데 스페인 군대가 네덜란드의 도시 브레다를 1625년에 함락시킨 모습을 나타낸 그림입니다. 어느 쪽이 네덜란드 군이고 스페인 군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왼쪽이 패자인 네덜란드 군대, 오른쪽이 승자인 스페인 군대입니다. 오른쪽의 스페인 군대는 창을 높이 치켜세우고 있고, 패자의 창은 어깨에 매여 기울어졌습니다. 가운데에는 스페인과 네덜란드 군대의 장군이 등장합니다. 승자는 스페인 장군 스피놀라이고, 패자는 네덜란드의 장군 나사우입니다. 나사우는 브레다 성의 열쇠를 몸을 굽혀 넘겨주고, 스피놀라 장군은 나사우의 어깨에 손을 얹고 관용을 베푸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벨라스케스는 스피놀라 장군에게 이 작품을 주려는 듯 스피놀라를 패자에게 너그럽게 관용을 베푸는 호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의 적재적소에 시선을 사로잡는 요소를 넣었습니다. 스페인 군인들은 화려한 장식이 있는 군복과 모자를 입었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남루한 옷을 입은 패자는 고개를 숙이고, 세밀하게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오른쪽에 비해 왼쪽이 단순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벨라스케스는 자신의 모습을 스페인의 군대 사이에 넣었습니다. 

벨라스케스-브레다의-항복
벨라스케스의 브레다의 항복


마치며

이번 장에서는 벨라스케스의 작품과 인생을 살펴보며 화가의 사회적 지위를 알아보았습니다. 스페인의 황금기 시절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가 주인공인 영화가 있다면 권력자 옆에서 점차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정치적인 인물로 그려질 것 같습니다. 

사회적 지위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라스 메니나스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광대와 시녀의 표정이 무척 세밀하고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뒤로 어둠 속에서 이야기를 하는 남녀와 먼 문밖에서 안쪽을 바라보는 귀족, 그리고 거울 속에 흐릿한 모습의 왕과 왕비가 있습니다. 지위로 보자는 거꾸로 된 것이죠. 16세기 스페인에는 궁정 예법이 엄격했습니다. 왕과 왕비도 이것에서 자유롭지 못했죠. 어릿광대나 난쟁이는 이런 궁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행동하였고, 왕가의 즐거움을 위해 봉사하며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권력의 통제와 허울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광대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아는 명화의 작품 명은 작가가 붙이지 않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이름은 19세기 미술관에서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라고 붙였다고 합니다. 벨라스케스가 이 작품의 이름을 듣는다면 마음에 들어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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