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역사] 미소의 주인공, 모나리자를 만나다!

루브르 박물관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려고 하는 작품이 보입니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입니다. 모나리자는 언제부터 이렇게 유명해졌을까요?

모나리자
모나리자



모나리자의 유명세

모나리자가 지금처럼 유명해진 것은 100년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모나리자의 도난과 관련이 깊지요. 모나리자는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을 당했습니다. 당시에는 별로 유명한 작품이 아니고, 또 촬영을 위해 작품을 빼 놓는 경우도 있어 하루가 지나도 잃어버린지 몰랐다고 합니다. 이후 2년이 지난서 이탈리아의 피렌체의 한 화상이 이 작품의 화가가 이탈리아 사람이니 작품을 이탈리아로 돌려보낸다고 하는 편지와 작품을 받게 되었죠. 

이 일이 있은 후 모나리자는 유명해졌고, 사람들은 모나리자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 유럽에서는 문맹률이 낮아지며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모나리자의 도난 기사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죠.



모나리자는 누구일까?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또 한가지는 모나리자가 누구일까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학설로는 피렌체의 상인 조콘도의 부인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설로는 사생아로 태어나 항상 본인이 그리워했던 어머니, 모나리자의 동성애인, 다빈치 자신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인물이 모나리자의 얼굴에서 읽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나리자의 기법

여러분 앞에서 누군가가 모나리자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것 같나요? 모나리자는 스푸마토라는 표현 기법으로 그려졌습니다. 스푸마토는 서구 회화에서 섬세한 음영법을 나타낼 때 사용된 미술기법입니다. 연기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푸모에서 나온 용어인데 마치 대기속으로 사라지는 연기처럼 영역의 경계를 미묘하고 부드럽게 처리하는 것입니다. 이 스푸마토 기법은 15세기 초반에 나타났는데 물체의 윤곽선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고, 색의 농담을 다르게 하여 여러번 겹쳐 칠하며 표현을 합니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눈썹이나 입술선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살이 두툼이 오른 것 같은 입체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작품 전체의 기법이 모나리자의 미소에 신비감을 더해 주죠. 바사리는 스무마토 기법이 당시에 인물을 표현하는 두드러진 특징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모나리자의 모습

모나리자의 얼굴과 자세를 살펴볼까요? 푹신한 팔걸이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있지만 목을 꼿꼿하게 세우고, 두손을 모으고 있습니다. 시선은 정면을 응시하며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하고 있습니다. 모나리자는 특정한 인물보다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함께 남성스러운 모습도 보여줍니다. 미소속에 굳게 다물어진 입술에는 기쁨과 함께 수많은 감정이 함께 내포되어 있는 듯 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요소를 조합하여 완전한 균형과 조화를 이룬게 이 작품의 멋진 모습이 되겠죠.



모나리자의 배경

이제 작품의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모나리자는 어디에 있는 것처럼 보이시나요? 작품의 배경은 낯선 자연 풍경처럼 보이기도 하고, 외부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신비한 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또 재미있는 점은 배경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연결하면 잘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두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죠. 특히 모나리자의 눈이 위치한 부분의 뒷배경은 서로 어긋나 있는 것 같습니다. 

다빈치는 왜 이렇게 작품의 배경을 모호하게 그렸을까요? 사실 다빈치는 동물과 식물의 구조와 일부분, 태아의 모습 등을 수없이 관찰하고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어떤 대상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묘사하고 잘 그릴 수 있었죠. 하지만 모나리자의 뒤로는 험준한 바위산이 보이고, 짙은 안개 속에서 구불구불 보이는 길과 저 멀리에는 다리도 있습니다. 나무는 초록빛이 담겨 있지만 계절을 잘 알 수는 없습니다. 동이 터오는 듯 나무 뒤에는 밝은 빛이 보이지만 테두리는 어두워지죠. 즉 계절이나 시간을 잘 알 수 없는 모습입니다. 

인물과 풍경의 관계도 모호합니다. 어깨 너머에 구불거리는 길은 모나리자의 부드러운 옷의 주름과 연결되고, 붉은 빛의 땅은 구릿빛 소매와도 연결됩니다. 머리에 쓴 베일도 경계가 모호합니다. 



마치며

모나리자는 이제 미술사의 분석의 영역을 벗어난 것 같습니다. 누구나 이해하고 즐기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사고의 테두리를 하나로 제한하지 많고 새롭게 자신의 눈으로 모나리자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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