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역사] 베토벤 에로이카 변주곡 — 음악계 최고의 영웅이 남긴 변주의 세계

변주곡이란 하나의 주제를 여러 방식으로 변형해가는 곡입니다. 음악에서는 사실 대부분의 곡이 어느 정도 변주를 담고 있습니다. 제목에 변주곡이라는 단어가 없어도, 소나타나 우리가 아는 보통 곡들 안에도 조금씩 변주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삶과 비슷합니다. '삶은 하나의 변주곡이다', '변화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는 말처럼 삶도 음악도 계속 달라져야 합니다. 서양 음악사에서는 15세기 전후 르네상스 시기에 변주곡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고 합니다. 변주곡은 아름다운 선율 하나로 작곡가만의 색채, 작곡 기법, 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형식 중 하나입니다. 

베토벤 곡 연주 전 인사장면
베토벤 곡 연주 후 인사장면



바흐의 골드베르크 —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위한 자장가 

바로크 시대 최고의 작곡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1742년에 쓴 변주곡 〈골드베르크〉는 도돌이표까지 모두 연주하면 1시간에 육박하는 대작입니다. 이 곡이 탄생한 배경이 재미있습니다. 바흐의 지인이 잠을 잘 못 자는 아이를 쉽게 재울 방법이 없냐고 물어봤고, 바흐가 그 부탁을 받아 작곡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자장가였는데, 50분이 넘는 자장가를 만들어버린 것이죠. 〈골드베르크〉는 음악사에서 이후 어떤 작곡가도 넘어서지 못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음악사의 최고 영웅이라 할 수 있는 베토벤도 변주곡에서 탁월한 작곡 기법을 보여줍니다. 연주자들이나 음악 전공자들이 베토벤의 변주곡을 5~10곡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출판된 베토벤의 변주곡은 20곡이 넘습니다. 그중 1823년에 작곡한 디아벨리 변주곡은 연주 시간이 60분을 넘습니다. 길고 연주하기도 힘들고, 듣기도 쉽지 않지만, 버릴 부분이 단 하나도 없는 빈틈없는 곡입니다. 




에로이카 변주곡 — 영웅이라는 이름의 서주

작품번호 35는 〈15개의 변주곡과 푸가〉입니다. 베토벤의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작곡된 곡으로, 부제는 에로이카, 영웅이라는 뜻입니다. 곡의 앞부분에 테마가 먼저 나옵니다. 이 테마는 이후 1시간짜리 연주를 짧게 소개하는 서주 역할을 합니다. 서곡이라고도 하는데, 일종의 맛보기인 셈입니다. 이 테마에서 나중에 15개의 변주가 펼쳐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베토벤 심포니 3번의 마지막 악장 피날레와 멜로디가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순서를 따지면 피아노 변주곡인 작품번호 35가 먼저 작곡됐고, 심포니는 작품번호 55이니, 변주곡의 멜로디를 심포니에 가져다 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멜로디 부분은 이후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가 편곡했습니다. 베토벤의 심포니는 원래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인데, 리스트가 이를 피아노 솔로 버전으로 옮긴 것입니다. 




서주를 들을 때의 포인트 

처음 서주 부분을 귀 기울여 들으면 뒤에서 변주되는 것들이 모두 이 서주에 담긴 멜로디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왼손이 베이스를 잡고 있으니, 오른손의 멜로디보다 왼손의 흐름을 먼저 따라가보세요. 화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다가 나중에는 주된 화성을 유지하면서 갑자기 단조로 바뀌기도 하고, 템포가 극적으로 느려지기도 합니다. 

영웅 변주곡의 15번째 변주는 악보 페이지가 많고 템포도 느리기 때문에 연주 시간이 상당히 깁니다. 마지막은 곡의 제목처럼 15개의 변주와 푸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푸가라는 모음곡까지 포함해 총 16곡의 모음곡인 셈입니다.




푸가를 무조건 넣은 이유 

푸가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집대성하고 발전시킨 음악 형식입니다. 베토벤은 바흐 이후의 작곡가 중 푸가를 가장 적극적으로 가져다 쓴 고전주의 시대 작곡가입니다. 피아노 연주자를 죽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연주하기 까다롭고 어려운 형식인데, 여러 성부가 동시에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토벤은 자신이 작곡하는 어떤 형식의 곡이든 가능하다면 푸가를 무조건 넣었습니다. 뛰어난 연주자이자 작곡가임에도 연주자들이 베토벤의 곡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푸가라는 장르의 어려움입니다. 베토벤에게 푸가는 선택이 아닌 음악적 신념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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