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피아노 주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도메니코 스카를라티는 바로크 후기를 대표하는 건반악기 연주자 겸 작곡가입니다. 유럽 음악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의 전형적인 음악 가정에서 태어났고, 현대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를 당대 최고 수준으로 다룬 건반악기의 대가였습니다.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 출신답게 오페라도 많이 작곡했지만, 건반악기 음악에 특히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하프시코드를 편의상 피아노라고 부르겠습니다. 피아노곡을 600곡 이상 남겼는데, 낭만주의 시대의 슈베르트가 1000곡에 가까운 가곡을 쏟아낸 것처럼 스카를라티도 피아노 음악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 도메니코 스카를라티(1685-1757) |
소나타 장르를 발전시킨 사람
스카를라티가 없었다면 소나타라는 장르 자체가 지금처럼 발전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실제로 스카를라티의 피아노 음악을 들어보면 현대 피아노로 연주하기에도 까다로운 주법이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건반악기에 대한 확신과 이해가 깊었던 작곡가였습니다.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를 소개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하프시코드라는 악기를 최고의 반열에 올린, 더 크게 보면 피아노를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은 작곡가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개인적인 바람인데,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피아노 소나타가 한국 무대에서 좀 더 자주 연주되었으면 합니다. 음악사적 의미, 연주 기법, 연주 효과 모든 면에서 뛰어난 곡인데 한국에서는 그리 자주 연주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당시는 300년 전 바로크 시대 후기라 지금 같은 전문 공연장이 없었고, 작은 홀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작곡된 곡이다 보니 실제로도 살롱 음악회나 하우스 콘서트에서 많이 연주됐습니다. 홀이 넓은 현대 공연장에서는 잘 올리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단악장 소나타 — 짧고 강렬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피아노 소나타는 보통 3악장입니다. 간혹 2악장도 있고, 베토벤부터는 4악장짜리도 작곡됐습니다. 그런데 스카를라티가 남긴 600여 곡의 피아노 소나타는 대부분 단악장이고 길어야 2악장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 익숙한 소나타 형식이 부각되기 어렵고, 공연했을 때 연주 시간도 매우 짧습니다. 템포가 빠른 곡은 반복 없이 연주하면 3분 만에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독주 레퍼토리보다는 앙코르 곡이나 소규모 공연장에서 더러 연주됩니다.
예전에 그런 시대의 음악가들이 나오는 삽화나 그림을 보면 큰 피아노 한 대와 연주자, 그 주위에 둘러선 사람들이 한 화면에 담겨 있습니다. 청중 수를 세어봐도 20명이면 많은 편일 정도로 연주회 규모가 작았습니다. 현대 피아노보다 크기와 음량이 훨씬 작은 하프시코드로 연주했으니, 그 공간에 맞게끔 작곡된 것이 당연합니다.
콰지 트롬베 — 기상나팔을 피아노로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중 '콰지 트롬베(Quasi Trombe)'는 첫 음이 울리는 순간 마치 기상나팔의 팡파르처럼 귀를 파고드는 곡입니다. 이탈리아어로 콰지는 '~처럼', 트롬베는 트롬본 같은 금관악기를 뜻합니다. 군대에서 기상나팔을 부는 느낌으로 연주하라는 의미인 셈입니다.
악보에는 트릴이 나오는 부분을 '트레몰로 디 소프라(Tremolo di sopra)'라고 기보했습니다. 소프라는 합창에서 가장 높은 음역인 소프라노를 가리킵니다. 이 곡은 라장조로 시작하는데, 각 음이 나올 때마다 가장 높은 음, 즉 소프라노가 되는 음을 트레몰로로 연주하라는 뜻입니다. 트릴과 비슷한 효과를 냅니다. 악보에 '트레몰로'나 '트레몰로 디 소프라' 표기가 없다면 연주가 밋밋하게 들릴 것입니다.
바흐와 같은 시대, 같은 형식
이 곡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형식으로 작곡됐습니다. 같은 시기 옆 나라 독일에서는 스카를라티와 동갑인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비슷한 형식으로 〈이탈리안 콘체르토〉를 작곡했습니다. 바흐도 스카를라티나 비발디처럼 당시 이탈리아 스타일로 작곡한 것이죠.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를 〈이탈리안 콘체르토〉처럼 오케스트라로 편곡한다면, 앞부분은 뚜띠, 그 다음은 솔리스트가 연주하거나 몇 개의 악기만 남는 구성으로 바뀔 겁니다. 앞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구조입니다. 1700년대 초반 바로크 후기, 음악 선진국이었던 이탈리아에서 크게 유행하던 방식이었습니다.
타지에서 더 빛난 독창성
문헌에 따르면 스카를라티는 정작 이탈리아에서 오래 살지 않았습니다. 포르투갈에서 한동안 머물다가 스페인으로 건너가 결혼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스페인에 정착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이었지만 타지에서의 삶이 스카를라티만의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냈다고 해석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스카를라티 음악에서 스페인적인 요소가 두드러지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문헌을 보고 스페인의 영향을 받았겠다고 생각했지만, 배경 지식 없이 그냥 들었을 때는 그런 색채가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타지에서 오래 살면서도 그 나라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을 꿋꿋하게 지켜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이탈리아에서 계속 활동했다면 더 유명해졌을 수도 있겠지만, 주변의 영향을 받아 독창성을 잃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낯선 땅에서 보낸 시간이 오히려 그를 누구와도 닮지 않은 작곡가로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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