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과 여성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보통은 보면 서로 사랑하다가 미워하기도 하고, 측은해 하다가도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서구의 회화에서 여성은 아름다운 여신이나 순결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종종 등장합니다. 하지만 여성의 모습은 이렇게 늘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다면적인 여성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생각하고 사랑하며, 아름답게 그려낸 작가가 있습니다. 오늘은 클림트의 작품 속의 여성의 모습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클림트와 에밀리 플뢰게
클림트 작품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여인입니다. 사실 클림트는 작품 뿐 아니라 그의 삶에서도 다양한 여인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는 평생 젊은 여인을 모델로 그렸고, 많은 여인과 사귀었습니다. 14명의 혼외 자녀를 둔 것에서 보는 것처럼 많은 여성을 만났습니다.
그 중 특히 사랑했던 여인은 에밀리 플뢰게라고 합니다. 클림트가 29살, 에밀리가 17살때 서로 만나고 알게 되었는데 서로 사랑하며 평생 관계가 이어졌습니다. 에밀리는 자유분방한 성격에 패션을 전공하였고, 여성을 옥죄는 코르셋 반대 투쟁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클림트의 여성 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는 순간에도 그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을 때에도 클림트의 무덤 옆에 묻히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 클림트의 에밀리 플뢰게, 1902년 |
클림트의 유디트
클림트의 작품 유디트를 살펴보겠습니다.
유디트는 유대 민족을 앗시리아군의 침략으로부터 구해낸 애국 소녀입니다. 앗시리아군이 자신의 민족으로 포위하였을 때 적군의 장수인 올로페르네를 유혹하여, 그가 잠들었을 때 목을 베고 민족을 구했던 인물입니다. 카라바조가 그린 올로페르네의 목을 치는 유디트라는 작품이 있는데, 별다른 동요 없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화려함이나 관능미 없이 현실감있게 묘사되었습니다.
하지만 클림트의 작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디트는 전혀 다른 여인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여인의 표정은 승리감이나 결의, 두려움 같은 감정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에로틱한 눈으로 관람자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관람자를 유혹하는 듯합니다. 클림트는 위험한 줄 알면서도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여인으로 해석합니다. 또한 이러한 관능적인 이미지 외에도 금박의 문양과 장식을 화려하게 배치하였습니다. 이 작품에서 유디트의 주제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작품의 하단에 그려진 반쪽의 적장 얼굴입니다. 이전의 유디트 작품에서는 교훈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유디트를 그렸다면 클림트는 상대방을 유혹하는 요부의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 클림트의 유디트, 1901년 |
클림트의 세 여인의 일상
클림트의 세 여인의 일상 그림입니다. 화려하고 격정적인 다른 초상화의 그림에 비해 차분하게 가라앉은 색채가 어딘지 고요한 느낌을 줍니다. 이 작품은 어린아이로 태어나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고, 또 다시 늙어가는 그런 여인의 삶을 보여줍니다. 어린아이와 젊은 여인의 다리를 푸른 망사가 휘어 감고, 머리 위에 둥근 패턴들이 부드럽고 청아한 느낌을 줍니다. 아기가 엄마의 가슴에 잠들어 있고, 엄마가 아이를 감싸고 있는데 어린아이의 살결을 만지고 있는 것처럼 섬세한 촉각이 느껴집니다. 이에 비해 고개를 숙인 채 머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은 살결이 얼룩덜룩하고 거칩니다. 고동색 계열의 작은 패턴이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여인을 살짝 덮고 있습니다. 또 화면의 많은 부분은 거친 나뭇결 같은 질감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 클림트의 세 여인의 일상, 1905년 |
클림트의 희망
마지막으로 볼 작품은 클림트의 희망이라는 작품입니다. 여기에서 여인의 모습은 화면의 작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대부분은 불룩 나온 듯 여인의 배를 덮고 있는 화려한 의상의 패턴입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그 패턴 안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러 다른 여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인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두 눈을 감고 있습니다. 사색에 잠겼는지 잠을 자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클림트는 이 작품에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세 여인의 일상과 함께 이 작품을 보면 여성에 대한 클림트의 태도나 시선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쩌면 복잡한 여성의 마음을 클림트는 잘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클림트의 희망, 1905년 |
마치며
클림트의 초상화에는 풍경이나 공간의 묘사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풍경화에는 인간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클림트는 여성을 깊이 사랑하고 탐닉하고 탐구하며, 자신의 감각과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였다는 것입니다. 일반화할 수 없는 여성의 다면적인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한 클림트,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