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역사] 스카를라티 토카타 - 환상적인 피아노 연타의 세계

토카타의 어원은 '닿다, 두드리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토카레(toccare)입니다. 16세기 중후반에 음악의 한 형식으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토카타는 손가락이 고통스러울 만큼 연타로 연주하는 방식으로, 특히 피아노에서 한 음이나 몇 음을 반복적으로 쳐가며 테크닉을 펼치는 주법입니다. 

템포가 빠르다 보니 연주 효과가 뛰어납니다. 주로 건반악기에서 많이 쓰이고, 현악기나 타악기로도 연주합니다. 하나의 음이나 몇 개의 음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치는 방식이다 보니 타현악기인 피아노에서 특히 자주 쓰입니다. 악기마다 저마다의 특성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토카타라는 주법이 피아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악보를-들고-있는-스카를라티
악보를 들고 있는 스카를라티



피아노의 장점과 한계 — 독립된 음, 그리고 연타 

피아노에는 88개의 건반이 있고, 건반마다 각각 독립된 음을 냅니다. 현악기는 음이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죠. 피아노의 아쉬운 점은 도 건반을 누르는 순간 도 소리만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악기나 관악기처럼 음을 섬세하게 맞춰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정해진 음과 음 사이의 미세한 소리를 낼 수는 없습니다. 현악기는 도와 레 사이의 음도 표현할 수 있죠. 현악기의 강점은 음을 자연스럽게 이어붙여 연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다른 악기도 연타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타현악기인 피아노는 토카타라는 주법으로 연타의 장점을 특히 잘 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토카타는 연주자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음악 형식입니다. 



한 음을 계속 친다는 것의 어려움 

한 음을 빠른 속도로 쉬지 않고 반복한다는 게 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체력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손가락 하나만으로 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리 요령이 생겨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보통 한 음을 연속해서 칠 때는 손가락 세 개를 원을 그리듯 번갈아 씁니다. 중지, 검지, 엄지, 다시 중지 순서로 돌아가며 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계속되면 손가락과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 오랫동안 연주하기 어렵습니다. 나중에는 쥐가 날 정도로 뻐근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힘을 빼면 음이 흐릿해집니다. 토카타는 타고난 집중력과 테크닉, 체력, 그리고 적절한 이완과 파워가 함께 갖춰져야 제대로 칠 수 있습니다. 피아니스트들이 토카타의 매력을 포기하기 싫어하면서도, 주법이나 음악 형식 면에서 기초가 탄탄해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스카를라티의 토카타 — 20초에 악보 한 장이 넘어간다 

스카를라티 소나타 중 토카타라는 부제가 붙은 곡이 있습니다. 소나타 곡 중 하나인데, 음악 형식 자체가 토카타이다 보니 부제도 토카타라고 불렸습니다. 20초 정도만 연주해도 악보 페이지가 넘어갈 만큼 빠른 곡입니다. 

챔발로를 쓰던 바로크 시대에는 지금처럼 빠르게 치지 않았을 겁니다. 현대 연주자들이 테크닉을 과시하기 위해 이 곡을 연주하다 보니 템포가 많이 빨라진 것입니다. 바로크 시대의 스카를라티 템포와 현대 연주자들의 템포가 다른 데는 피아노의 발달과 관련이 있습니다. 요즘 가정에서 많이 쓰는 업라이트 피아노는 아주 빠른 템포로 연주하기 어렵습니다. 건반의 반응속도가 손가락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기계적 한계 때문입니다. 반면 업라이트와 구조가 완전히 다른 그랜드 피아노에서는 훨씬 빠른 템포도 가능합니다. 그만큼 기계적인 정밀도가 중요한 곡입니다.



바흐의 토카타 vs 스카를라티의 토카타 

바로크 시대 작곡가 중 비발디가 현악기 분야에서 큰 획을 그었다면, 스카를라티는 건반악기에서 그에 해당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토카타라는 형식에서 두드러집니다. 하지만 토카타라는 용어를 실제로 더 많이 사용한 작곡가는 바흐입니다. 바흐는 종교음악에서 토카타를 즐겨 썼고, 그래서 스카를라티의 곡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교회에 속한 궁중음악가였던 바흐의 토카타는 경건하고 장엄한 느낌이 강합니다. 반면 스카를라티는 이탈리아 출신답게 건반악기 자체의 물리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토카타를 풀어냈습니다. 

스카를라티 덕분에 이후 낭만주의 시대의 슈만, 인상주의의 드뷔시, 라벨, 프로코피에프 등 수많은 작곡가들이 토카타라는 형식으로 곡을 쓸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현대 작곡가들이 건반악기 작품 제목에 토카타를 즐겨 붙입니다. 그만큼 토카타는 현대 음악에서도 중요한 형식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작은 홀에서 더 빛나는 곡 

스카를라티 〈토카타〉의 뒷부분에도 전형적인 토카타 주법이 이어집니다. 하나의 음을 끊임없이 치는 구간이 나오는데, 이 곡은 매우 짧으면서도 쉴 틈 없이 건반을 두드리는 전형적인 토카타입니다. 리스트나 쇼팽, 슈만의 곡처럼 대형 콘서트홀을 채우는 스펙터클한 곡이 아니라, 살롱이나 소규모 공간에 어울리는 실내악 성격의 곡입니다. 바로크 음악이 살롱음악, 하우스 음악이라 불리는 이유를 이 곡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100석 안팎의 작은 홀에서 들으면 토카타 주법의 생동감이 공간을 꽉 채우는 느낌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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