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어떤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하게 밀어붙이는데, 어떤 곡은 조용히 스며들어 오래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브람스의 인터메조가 딱 그런 곡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곡은 독일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의 작품번호 118 중 두 번째 곡인 〈인터메조〉입니다.
인터메조는 '사이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말로는 간주곡이라고 하죠. 원래 오페라에서 나온 개념인데, 막과 막 사이에 무대를 바꾸고 의상을 갈아입는 시간 동안 관객들에게 보여주던 짧은 퍼포먼스였습니다. 비극 오페라에서는 희극적인 분위기의 인터메조를, 희극 오페라에서는 비극적인 것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반드시 상반되어야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이 막간 공연 형식이 낭만주의 시대에 독립된 음악 장르로 발전하게 됩니다. 브람스의 〈인터메조〉 덕분에 인터메조라는 장르가 하나의 소품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 브람스(1833-1897) |
브람스, 쇼팽과는 다른 길을 걸은 작곡가
브람스는 당대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지만 피아노곡은 많이 쓰지 않았습니다. 초창기에 피아노 소나타 3곡을 비롯한 몇 곡을 쓰고 작품 활동 후기까지 피아노곡은 거의 손대지 않았습니다. 대신 실내악에서 최고의 작곡가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쇼팽이 피아노 한 악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것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은 셈입니다.
브람스는 작품번호 118을 1893년에 당시 최고의 여류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에게 헌정했습니다. 원본 악보의 작품번호 아래에 클라라 슈만에게 헌정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클라라 슈만은 앞서 소개한 로베르트 슈만과 결혼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의 관계가 참 특별합니다. 브람스는 로베르트 슈만과도 친했고, 클라라 슈만과도 친했으며, 죽을 때까지 세 사람이 항상 함께했다고 합니다.
독일 낭만주의의 절제된 감성
인터메조는 전형적인 독일 낭만주의 곡입니다. 비슷한 시기의 러시아나 프랑스, 스페인 낭만주의 곡들과는 결이 다릅니다.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특징은 특별한 멜로디나 선율을 앞세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화음 안에서 움직이는 다른 화음들도 철저하게 중시합니다. 멜로디가 분명하게 살아있으면서도 그 선율을 따르는 다른 화음들도 빠짐없이 중요하게 다루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독일이라는 나라의 색깔과 특성인 것 같습니다. 처음 브람스를 들었을 때 프랑스나 러시아 음악처럼 색채가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여러 번 듣다 보니 그 절제된 균형감이 오히려 더 오래 귀에 남는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종교음악의 향기가 스민 중간 부분
브람스의 〈인터메조〉에서 갑자기 앞부분과 분위기가 달라지며 교회나 종교음악 느낌의 선율이 나옵니다. 브람스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교회와 관련된 칸타타 같은 곡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영향으로 종교음악의 패턴이 인터메조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부분에는 '퓨 렌토'라는 나타냄말이 쓰여 있습니다. 렌토는 느리게, 퓨는 좀 더라는 뜻이니, 렌토보다 한층 더 천천히 연주하라는 지시입니다. '우나코르다'도 함께 표기되어 있는데, 왼쪽 페달을 밟아 음향을 줄이고 몽롱한 분위기를 만들라는 의미입니다. 이 8마디 구간이 〈인터메조〉라는 곡 안에 있는 또 다른 인터메조 같습니다. 앞부분과 뒷부분을 연결해주는 전혀 다른 결의 8마디를 넣어서 지루하지 않게 하면서, 작곡가가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맛보기로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칼란도 — 구름처럼 사라지는 마무리
마지막 부분에서 브람스는 '칼란도(calando)'라는 나타냄말을 사용했습니다. 동시대 다른 나라 작곡가들이 점점 느리고 작게 연주하라는 표현으로 '리타르단도'를 주로 쓴 것과 달리, 독일의 예술 가곡으로 유명한 브람스는 시적인 표현을 택했습니다. 칼란도는 구름과 함께 사라지듯, 연기처럼 스러지듯이라는 의미입니다. 같은 지시도 이렇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칼란도로 연주하는 부분 다음에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분위기의 '돌체'로 이어집니다. 칼란도로 연주하는 부분이 돌체로 연주하는 부분을 살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리고 가장 마지막은 아주 느린 템포로 고요하게 끝납니다. 감미롭고 멋진 곡입니다.
인터메조의 음악적 형식은 3부 형식으로, 짧은 모티브가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하고 발전하면서 통일성과 형식미를 만들어가는 고전적인 구조입니다. 인터메조의 뒷부분은 첫부분과 거의 비슷합니다. 간혹 한두 군데서 화음이 조금 바뀌지만 99% 이상 분위기가 흡사합니다. 3부 형식과 인터메조, 이 두 가지 형식은 어떤 시대, 어떤 악기를 막론하고 모든 작곡가가 즐겨 쓰고 또 이를 벗어나서는 작곡하기 힘든 음악적 기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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