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파가니니라는 이름 앞에서는 늘 좀 다른 감정이 생깁니다. 작곡가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존재감이 너무 강렬해서, 음악 자체보다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 먼저 빠져들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파가니니를 따라한 작곡가들
파가니니는 수많은 작곡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그의 곡을 자신의 색깔에 맞게 편곡한 작곡가가 한둘이 아닙니다. 단순히 멜로디가 좋아서라기보다, 파가니니 특유의 강렬한 카리스마에 매료되어 따라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지금까지도 현악기의 대표적인 연주자를 꼽으라고 하면 파가니니가 빠지지 않을 만큼,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독보적인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파가니니가 작곡한 〈24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카프리스〉는 브람스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 곡이었습니다. 브람스는 이 곡의 메인 멜로디를 14개의 변주곡으로 편곡했는데, 이번에 소개할 〈하프트 원〉이 그 중 하나입니다. 비슷한 변주곡이 하나 더 있어서 보통 〈하프트 원〉과 〈하프트 투〉로 구분해 부릅니다. 두 곡 모두 편곡이 잘 되어 있고 피아노의 다양한 기법을 폭넓게 담고 있는데, 그 중 〈하프트 원〉이 기술적으로 조금 더 까다롭습니다.
연주자를 애먹이는 브람스의 구도
브람스의 곡은 연주자들을 많이 애먹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악보를 처음 펼쳤을 때 그 난감함이 단순히 음표가 많아서가 아니라는 걸 금방 알게 됩니다. 독일 작곡가 특유의 탄탄하고 다양한 구도가 곡 안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구도의 다양성은 베토벤에서 시작된 계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래서 브람스를 가리켜 '베토벤이 재탄생했다', '낭만주의 스타일의 베토벤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것은 결국 모방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베토벤이라는 훌륭한 선배 작곡가가 있었고, 그를 토대로 공부한 브람스 특유의 작곡 기법과 음악이 탄생한 것이니까요.
〈하프트 원〉은 첫 번째 변주부터 기술적으로 쉬운 구간이 없습니다. 3도 움직임, 5도 움직임, 도약이라는 피아노 테크닉 용어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손가락의 간격을 3도, 5도로 벌려서 연주하고, 도약은 말 그대로 건반 위에서 손이 크게 뛰어야 하는 동작입니다. 도약이 많을수록 틀릴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에 연습을 많이 해도 무대에서 늘 긴장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요하네스 브람스 |
11번주에서 갑자기 바뀌는 분위기
〈하프트 원〉은 브람스 특유의 중후하고 무게감 있는 음악이 이어지다가 11번주에서 갑자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쇼팽이나 슈만의 낭만적인 멜로디처럼 구름에 붕 뜬 느낌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입니다. 처음 이 곡을 접한 게 고등학생 때였는데, 그 11번주 부분이 나오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습니다. 그 악보를 지금도 가끔 꺼내 보면 그때의 감정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글로 써놓은 것들이 그런 면에서 참 좋습니다.
글리산도와 옥타브 — 손이 작으면 불가능한 테크닉
연주를 하다 보면 한 옥타브 채로 건반을 긁고 내려오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걸 글리산도라고 합니다. 부드럽게 쭉 미끄러지듯 연주해야 하는데, 이 부분 자체도 쉽지 않고 옥타브에서 꾸밈음을 넣는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손이 작으면 이 곡은 아예 연주가 불가능합니다. 〈하프트 원〉과 〈하프트 투〉의 난이도 차이는 차후 문제이고, 손이 큰 연주자들이 특히 〈하프트 원〉을 많이 선택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콩쿠르나 연주회에서도 자주 연주되는 곡인데, 무대에서 이 곡을 완성도 있게 끌고 가는 연주자를 보면 그 자체로 압도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