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배우다 보면 어느 시점에 독일 음악과 프랑스 음악의 결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독일 음악은 악보를 보는 순간부터 구조가 눈에 들어오는 반면, 드뷔시의 곡을 처음 펼쳤을 때는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정해진 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게 바로 드뷔시가 의도한 방식이었습니다.
인상주의는 미술에서 먼저 시작됐다
드뷔시를 이야기하려면 인상주의 미술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인상주의는 음악보다 미술에서 먼저 등장한 사조입니다. 1874년 프랑스의 한 전시회에서 르루아라는 유명한 미술 평론가가 모네의 작품을 비판하며 쓴 단어가 '인상'이었는데, 그게 하나의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이전까지 미술은 사실을 그리거나 사물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이 주류였습니다. 그런데 1800년대 초중반부터 몇몇 화가들 사이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생겼고, 그들이 모여 연 전시에서 인상주의라는 흐름이 탄생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기교적으로 정교한 그림 대신 햇빛이 움직일 때 그림자가 바뀌는 미세한 변화, 시각적 착시 같은 순간의 느낌을 포착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대중들이 인상주의 미술에 빠르게 반응한 이유는 소재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완벽하게 사실적이지는 않지만 보기에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드뷔시가 인상주의를 음악에 가져온 것은 미술에서 그 사조가 자리 잡은 뒤 10에서 20여 년이 지나서였습니다.
| 클로드 드뷔시(1862-1918) |
달빛이라는 시에서 태어난 〈베르가마스크〉
드뷔시의 초기 작품 〈베르가마스크〉 중 한 곡이 바로 〈달빛〉입니다. 원제는 'Clair de Lune'으로, 한국에서는 베토벤의 〈월광〉과 구별하기 위해 보통 〈달빛〉이라고 부릅니다. 드뷔시가 어느 날 달빛이라는 제목의 시를 읽고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입니다.
베토벤의 음악처럼 거대하거나 뚜렷한 구조를 가진 곡이 아닙니다. 순간순간의 느낌을 음악으로 풀어낸 것이 핵심인데, 미술의 인상주의 사조를 드뷔시가 음악에 그대로 옮겨온 방식입니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악보에서 보이는 구조와 실제로 귀에 들어오는 느낌이 달라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연주해보고 나서야 이 곡은 분석하는 것보다 느끼는 것이 먼저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달이냐, 달빛이냐 — 연주자의 해석이 곧 정답이다
개인적으로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달 자체보다는 수평선 너머로 잔잔하게 물결치는 바다에 달빛이 스며드는 분위기가 먼저 떠오릅니다. 왼손으로 연주하는 반주 부분이 물결을 잘게 치는 느낌이거든요.
드뷔시는 달이 크고 둥글게 보이면 그 감각을 그대로 담고, 갑자기 달에 그림자가 생기면 그 새로운 느낌을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인상주의 음악에서는 맞고 틀리다는 기준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연주자의 해석대로 표현하면 되고, 어떤 해석이든 가능합니다. 가르치면서도 이 점을 학생들에게 강조합니다. 이 곡만큼은 정해진 답을 주지 않고 각자가 어떤 장면을 떠올리는지 먼저 물어보거든요.
뒷부분은 물결이 파도가 치듯 크게 일렁이는 느낌으로 바뀝니다. 왼손으로 연주하는 부분이 가우동거리는 느낌인데, 드뷔시의 달빛 곡을 처음 듣고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린다면 인상주의를 역으로 표현하는 셈이 됩니다. 원래 인상주의 음악이 미술에서 차용한 것이었으니까요.
예술이 서로를 부르는 방식 — 무소르그스키부터 칸딘스키까지
음악과 미술이 서로를 영감으로 삼는 사례는 드뷔시만이 아닙니다. 러시아 작곡가 모데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대표적입니다. 친한 친구였던 건축가 겸 미술가 하르트만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유작 전시회를 관람한 무소르그스키가 작품들을 보며 받은 감동을 음악으로 풀어낸 곡입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후에 추상주의 화가 칸딘스키가 〈전람회의 그림〉을 듣고 다시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음악이 미술이 되고, 미술이 다시 음악이 되고, 그 음악이 또 다른 그림이 되는 구조입니다. 칸딘스키는 음악을 미술로 표현한 화가로 유명한데, 현대에는 그의 작품을 바탕으로 현대 무용의 안무를 짜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예술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서로를 참고하고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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