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역사]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를 듣기 전에

라흐마니노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손입니다.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저 사람 손이 크구나", "손이 화려하구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만큼, 라흐마니노프의 손은 그 자체로 유명합니다. 실제로 손이 너무 크고 손가락이 길다 보니 피아노 건반 뒤쪽 나무판에 손이 닿아서 항상 손을 오므리고 연주했다고 합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악기에 손이 닿는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라흐마니노프의 손 크기를 실측한 자료를 보고 나서야 이해가 됐습니다.


세르게이-라흐마니노프(1873-1943)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



프렐류드란 무엇인가 — 전주곡에서 독립 장르로 

프렐류드는 전주곡이라고 합니다. 원래 어떤 곡을 연주할 때 짧게 먼저 연주하는 앞부분을 가리켰는데, 이 형식이 점차 발전하면서 낭만주의 시대에는 곡 안에 포함된 부분이 아니라 거의 독립된 장르로 자리 잡았습니다. '프렐류드와 코랄', '프렐류드와 판타지'처럼 다른 형식과 짝을 이루는 방식으로 발전하기도 했고, 낭만주의 이후로는 프렐류드 단독으로도 하나의 음악 장르가 됐습니다. 

프렐류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6세기까지 닿습니다. 그 이전에는 사실상 기악곡이 많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악기가 제대로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당시에는 화음 없이 단선으로 노래 부르는 성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6세기경부터 악기가 발달하면서 프렐류드가 생겨났고, 바로크 시대 중기에 거의 완성됐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프렐류드를 많이 작곡했습니다. 

바흐는 프렐류드를 독립된 음악 장르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프렐류드에 힘을 실어준 작곡가입니다. 바흐의 평균율을 보면 '프렐류드와 합창', '프렐류드와 푸가'처럼 프렐류드를 곡 안에 삽입된 부분으로 보지 않고, 곡과 거의 대등하게 다뤘습니다. 프렐류드가 바흐의 평균율에서 하나의 음악 장르로 독립되었다고 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쇼팽의 〈프렐류드〉가 콩쿠르 지정곡인 이유 

19세기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 쇼팽, 인상주의 작곡가 스크라빈, 드뷔시, 라흐마니노프 같은 작곡가들은 프렐류드를 많이 작곡했고, 이 곡들을 하나로 모아서 출판했습니다. 작은 프렐류드 작품을 10곡 이상 모아서 하나의 작품집으로 묶은 것입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프렐류드는 19세기부터 완전히 독립된 장르로 굳어졌습니다. 

쇼팽의 〈프렐류드〉는 영화 음악이나 드라마, 광고 배경음악에 많이 쓰여서 클래식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곡입니다.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연주자의 기본적인 테크닉을 확인하기 위해 지정곡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길이가 3분 이내인 프렐류드를 지정곡으로 쓴다는 것은 그만큼 이 짧은 곡 안에 담긴 것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 4세부터 피아노를 배운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입니다. 작곡가로도 유명하지만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이 더 컸던 인물입니다. 4세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낭만주의 시대나 고전주의 시대, 그 이전 시대의 작곡가들은 대부분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웠다는 기록이 많습니다. 당시 유럽은 남녀차별이 심했고, 초기 낭만주의 시대 전까지는 여성이 공식적으로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한 예로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은 아내 클라라 슈만이 없었으면 좋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슈만이 클라라에게 영감을 얻어 곡을 썼다는 의미가 아니라, 클라라가 슈만이 작곡한 곡을 직접 피아노로 초연하면서 검토하고 고쳐줬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는 클라라 슈만이 작업한 수준이라고 하지만 로베르트 슈만의 이름으로 출판해야만 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오케스트라 단원은 전부 남자였다고 하니, 유럽에도 아직 남아 있는 차별의 역사가 있습니다. 




인상주의처럼 들리지만 낭만주의에 더 가깝다 

라흐마니노프가 태어난 연도나 활동한 시기를 보면 인상주의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그의 음악을 인상주의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의 작곡 기법은 낭만주의 음악에 더 가깝습니다. 음악적 구조나 화음, 화성이 후기 낭만주의의 방식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라흐마니노프를 후기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곡가 중 한 명으로 봅니다. 

1800년도 말에 녹음 기술이 처음 발명되어 1900년대 초에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녹음한 음반이 남아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현재는 디지털 방식으로 재녹음되어 음반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음반인데,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를 들어보면 지금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라흐마니노프가 더 잘 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음질은 아쉽지만 테크닉만큼은 너무나도 완벽한 연주입니다. 




이번 챕터의 곡 — 〈5개의 피아노 판타지〉 중 〈프렐류드〉

이번에 소개할 음악은 라흐마니노프의 〈5개의 피아노 판타지〉 모음곡 중 두 번째 곡인 〈프렐류드〉입니다. 5개의 모음곡은 서로 크게 연관이 없고, 각각 제목이 있는 환상적인 느낌의 곡 5개를 작품번호 3으로 묶은 것입니다. 작품번호 3의 두 번째 작품 제목이 〈프렐류드〉입니다. 

이 곡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프렐류드와 분위기가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음침합니다. 곡의 뒷부분은 라흐마니노프가 손이 큰 자신만 칠 수 있게 일부러 작곡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아니면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피아노로 담고 싶어서 확장된 느낌의 곡을 썼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곡은 코드를 많이 사용하는데, 손가락이 서로 겹치기도 하고 한 번에 8개의 음을 치기도 합니다. 겹치는 음에서 왼손이 위로 올라오거나, 오른손이 올라오거나, 아니면 바뀌기도 합니다. 그래서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연주할 때는 신체적인 부분에서 실수가 나오거나 마음에 들지 않게 연주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피아니스트에게 라흐마니노프는 언제나 극복하고 싶고, 다시 도전하고 싶은 작곡가입니다.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