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라는 이름이 사실 독일식으로 바꾼 이름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본명은 헝가리식으로 리스트 페렌츠인데, 평생 독일에서 가장 오래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란츠 리스트로 굳어졌습니다. 1811년생으로 여섯 살 때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처음 배웠고, 열 살도 채 안 된 나이에 이미 연주회 무대에 섰습니다. 당시 클래식 음악의 심장은 빈이었고,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모두 빈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뒤 유럽으로 퍼져나간 인물들입니다.
| 프란츠 리스트 |
체르니의 제자, 파가니니의 팬
열 살이 된 리스트는 빈으로 건너가 베토벤의 수제자였던 체르니 밑에서 배웁니다. 피아노를 배운 사람이라면 체르니 연습곡을 모를 수 없죠. 저도 어릴 때 체르니 30번, 40번을 질리도록 쳤는데, 그 체르니가 리스트를 아들처럼 아꼈다고 합니다. 공연 여행을 다닐 때도 늘 데리고 다녔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리스트의 음악 인생을 뒤흔든 사건이 생깁니다.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연주를 접한 것입니다. 파가니니의 연주에 리스트는 완전히 압도됩니다. 파가니니도 리스트의 피아노 실력에 놀랐고, 둘은 서로에게 빠져들었습니다. 이후 리스트는 체르니에게 배우던 체계적인 훈련에서 벗어나 파가니니식의 극적이고 과시적인 방향으로 음악 스타일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화려하고 강렬한 리스트의 색깔이 이때 만들어진 셈입니다.
리스트는 쇼팽, 슈만, 멘델스존, 베를리오즈 같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했습니다. 각자 자기 분야의 정상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예술관을 발전시킨 것이죠. 이런 동료들과의 관계가 체르니에게 배운 것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리스트를 성장시켰습니다.
리스트의 녹턴 — 존 필드, 쇼팽과 다른 결
녹턴은 존 필드가 장르로 완성시키고 쇼팽이 대중화했습니다. 리스트도 녹턴을 썼는데, 두 사람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존 필드의 녹턴이 잔잔하고 간결하다면, 쇼팽의 녹턴은 서정적이고 깊습니다. 리스트의 녹턴은 화려하면서도 몽롱한, 리스트만의 색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곡은 그 리스트의 녹턴 중 〈사랑의 꿈〉입니다. 흔히 녹턴 3곡의 모음집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는 세 번째 곡의 제목이 〈사랑의 꿈〉입니다. 세 번째 곡이 워낙 유명해지다 보니 모음집 전체를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죠.
우나코르다 — 왼쪽 페달로 꿈을 만든다
악보를 처음 펼치면 첫 마디부터 '우나코르다'라는 표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우나는 이탈리아어로 하나, 코르다는 현을 뜻합니다. 피아노의 세 페달 중 가장 왼쪽 것을 밟으라는 지시입니다. 이 페달을 밟으면 소리가 작아지는 것 외에도, 음색 자체가 살짝 몽롱해지는 효과가 납니다. 리스트가 곡 첫머리부터 이 페달을 요구한 건 〈사랑의 꿈〉에서 '꿈'이라는 분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악보를 처음 봤을 때 첫 음부터 이런 세심한 지시가 담겨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악보에는 나타냄말도 유독 많습니다. 멜로디 선율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나머지 반주 부분은 뒤로 빠지게 연주하라는 지시들입니다. 리스트가 연주자에게 전하고 싶은 게 참 많았던 곡인 것 같습니다.
결혼식에서도 울려 퍼지는 이유
세 번째 곡은 현악기로 편곡해서 연주하는 경우도 많고, 결혼식 축주로도 자주 쓰입니다. 리스트가 악보에 독일어로 시를 직접 써넣었는데, '내 사랑, 당신을 최대한 사랑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제목 그대로 사랑에 관한 곡입니다.
구조적으로는 단순한 편입니다. 처음 등장하는 주제가 조성과 템포, 다이내믹을 조금씩 바꿔가며 반복됩니다. 마지막 부분도 처음 주제와 거의 흡사한 선율로 돌아오다가 아주 잔잔하게 마무리됩니다. 완전히 같지는 않고 선율의 뼈대는 유지하되 주변 음들을 살짝 바꾸는 방식입니다.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 안에서 감정의 온도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이 곡의 매력입니다.
나타냄말이 많아질수록 무엇이 달라지나
바로크에서 클래식, 낭만주의로 시대가 흐를수록 악보에 기보되는 나타냄말의 양이 늘어납니다. 악기의 성능이 발전하면서 작곡가들이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고, 그만큼 연주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도 많아진 셈입니다. 베토벤이 그 전환점에 있는데, 초기작에는 나타냄말이 드문 반면 후기로 갈수록 매우 정밀하게 기보되어 있습니다.
나타냄말이 많으면 연주 전에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방향을 잡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지시가 너무 촘촘하면 연주자가 자기 감정을 개입시킬 여지가 줄어든다는 생각도 듭니다. 클래식을 좋아하면서 이런 나타냄말 하나에도 작곡가의 의도와 시대의 흐름이 담겨 있다는 걸 알아갈수록, 같은 악보가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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