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역사] 24개의 변주로 완성된 라흐마니노프의 집대성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클래식을 오래 들어온 사람도 협주곡 앞에서는 처음에 좀 막막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악장 구분도 헷갈리고, 어디서 박수를 쳐야 할지 모르겠고, 피아노 솔로와 오케스트라가 번갈아 나오다 보면 흐름을 놓치기 쉽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제대로 즐기려면 협주곡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지는지 먼저 알고 들으면 훨씬 재미있습니다. 




협주곡이란 무엇인가 — 콘체르토의 뜻

협주곡은 독일어로 콘체르토라고 합니다. 콘체르토는 라틴어로 돕는다는 의미와 협동한다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피아노 솔로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할 때 피아노 협주곡이라고 하고,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함께 연주하면 듀엣이나 앙상블이라고 합니다. 이 경우 협주곡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협연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콘체르토라는 용어는 바로크 시대인 16세기에 처음 생겼고, 바로크 시대의 대표 작곡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이 장르를 발전시키고 완성했습니다. 

협주곡은 간혹 4악장이나 5악장, 그 이상인 경우도 있고 1악장으로만 이루어진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3악장으로 구성됩니다. 1악장으로 이루어진 협주곡은 단악장이라고 하는데, 프란츠 리스트의 협주곡도 단악장이라고 합니다. 보통은 3악장으로 이루어지고 소나타 형식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A-B-A 또는 A-B-A'처럼 1악장은 빠르고, 2악장은 느리고, 3악장은 다시 빠른 구성입니다. 이런 템포나 음악적인 성향은 바로크 시대부터 지금까지도 비슷하게 이어집니다. 




라흐마니노프와 미국 망명 — 〈피아노 협주곡〉 2번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에서 평생을 스탈린에게 괴롭힘 당한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와 달리 미국으로 망명해서 비교적 편하게 음악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1901년에 글렌카 상을 받으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졌고, 부와 명예도 얻게 됐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곡 중 가장 유명한 곡이 〈피아노 협주곡〉 2번입니다. 이 곡은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국의 팝가수 에릭 카멜이 2악장의 멜로디를 차용해 〈All by Myself〉라는 곡을 불렀습니다. 후에 셀린 디온도 같은 곡을 불렀습니다. 이 멜로디를 처음 들었을 때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오래전부터 귀에 익은 곡이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젊은 시절)
라흐마니노프(젊은 시절)



이번 챕터의 곡 —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이번 챕터에서 소개할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입니다. 협주곡을 다시 변주한 곡인데, 변주의 개수가 24개입니다. 변주한 곡이 많다 보니 악장을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꽤 명확하게 구분됩니다. 파가니니의 주제를 포함해서 1변주부터 10변주까지는 빠른 템포로 1악장으로 보고, 11변주부터 18변주까지는 느린 템포로 2악장으로 보고, 19변주부터 24변주까지는 다시 템포가 빨라지는 3악장으로 봅니다. 

파가니니는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그의 곡의 주제 멜로디는 TV나 라디오, 영화에 많이 나와 이미 익숙합니다. 많은 작곡가들이 파가니니 주제로 연습곡을 작곡했는데, 리스트는 피아노 솔로곡으로 편곡했고, 브람스는 변주곡을 작곡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파가니니 주제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한 뒤 다시 변주한 형태입니다.

첫 부분은 주제가 나오고 변주가 뒤에 나옵니다. 이런 구성은 베토벤의 영향과 구조가 비슷하다 보니 음악학자들은 라흐마니노프가 베토벤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변주 부분 다음에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그 다음에 테마가 나오는 구성으로 24개의 변주가 마무리됩니다. 




18번주 — 거꾸로 뒤집었더니 전혀 다른 곡이 됐다 

24개의 변주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부분이 18번주입니다. 처음 이 멜로디를 들었을 때 파가니니 주제와 같은 곡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거든요. 비결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어둡고 긴장된 단조를 밝은 장조로 바꾸고, 음계의 진행 방향을 역순으로 뒤집고, 거기에 템포까지 느리게 조정했습니다. 같은 재료인데 순서와 색깔을 바꿨을 뿐인데 완전히 새로운 음악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 멜로디가 얼마나 많은 곡으로 재탄생했는지는 검색만 해봐도 실감이 됩니다. 일본 편곡가의 피아노 솔로 버전, 3박자를 4박자로 늘려서 만든 블루스 버전,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 합창 버전까지 악기와 장르를 넘나드는 편곡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좋은 멜로디 하나가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 이 곡이 증명합니다. 




24번주 — 피아노가 감당할 수 있는 모든 것 

마지막 24번주는 이 곡 전체를 통틀어 가장 난이도가 높은 구간입니다. 도약 테크닉이 집중적으로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도약은 한 옥타브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반면 이 부분은 두 옥타브를 뛰어넘습니다. 빠른 템포까지 더해지니 무대에서 이 구간을 완벽하게 통과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도전입니다. 건반 위를 미끄러지듯 쭉 내려오는 글리산도도 등장하는데, 손 크기가 받쳐줘야 가능한 기법이라 연주자 입장에서는 이 대목이 항상 긴장됩니다. 

1934년 말에 완성된 이 곡은 마지막 마무리가 독특합니다. 스케일이 점점 커지고 드라마틱하게 고조되다가 마지막 순간에 장난기 넘치게 툭 끝납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젊은 시절 쓴 곡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여유입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다져진 작곡가의 능숙함이 마지막 음표 하나에도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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