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배우다 보면 어느 순간 베토벤의 벽 앞에 서게 됩니다. 소나타를 공부할 때 특히 그렇습니다. 베토벤이 32개의 소나타를 남긴 이후 약 100년 동안 그 그늘에서 벗어난 작곡가가 사실상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낭만주의 시대의 리스트나 쇼팽, 슈만도 소나타를 작곡했지만 장르를 집대성하고 자신만의 색깔로 완성한 작곡가는 베토벤 이후로 프로코피에프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1891-1953) |
신고전주의란 무엇인가 — 오래된 것을 새롭게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하면 항상 따라붙는 말이 신고전주의입니다. 신고전주의란 고전주의를 새롭게 다시 발견하거나 발전시킨 것으로 보면 됩니다. 이 용어도 원래는 미술에서 나온 개념인데, 음악사에 널리 퍼지게 된 계기는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1920년에 발표한 곡 때문입니다. 그 곡이 신고전주의라는 장르를 음악에서 융합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사적으로는 프로코피에프가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라고 말하지만, 그의 작품은 장르가 너무 다양합니다. 어린이를 위한 작품으로 시작해서 아주 난해한 곡까지,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음악사적으로는 신고전주의의 중심에 있던 작곡가라고 하지만, 그의 음악 세계는 그 한 단어로 다 담기지 않습니다.
스탈린 치하에서 작곡한다는 것
20세기 러시아는 혁명으로 나라가 어수선했습니다. 프로코피에프는 잠시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스탈린에 의해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습니다. 스탈린의 독재에 많이 이용당한 음악가 중 한 명입니다. 반면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으로 망명해서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러시아로 돌아온 프로코피에프는 스탈린이 원하는 곡을 작곡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신고전주의를 놓지 않았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곡한 곡도 있고, 아카데믹하게 작곡한 곡도 있으며, 아이들을 위한 소품도 많이 남겼습니다. 이것이 프로코피에프의 작품 세계가 유독 넓고 다양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전쟁 소나타 — 소나타 6, 7, 8번
이번 챕터에서 소개할 곡은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소나타 7번, 작품번호 83입니다. 보통 소나타 6, 7, 8번을 묶어서 전쟁 소나타라고 부릅니다. 전쟁의 느낌을 담은 곡이기도 하고, 당시 구소련의 정세를 그대로 따라간 곡이기도 합니다. 스탈린 정권 때 프로코피에프가 고난을 받으면서 죽을 때까지 독재 정치에 대한 저항을 음악으로 표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곡의 길이나 비중, 테크닉 면에서도 피아노곡 중 대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주 어려운 곡 중 하나입니다.
1악장 — 화나고 불안한 오프닝
소나타 7번의 1악장 앞부분은 뭔가 화난 듯한 느낌이 납니다. 프로코피에프가 악보 맨 앞에 '알레그로 인쿠에토'라고 직접 기보했습니다. 빠르고 침착하지 않게, 정서가 불안하게 연주하라는 나타냄말입니다. 처음 이 악보를 펼쳤을 때 시작부터 긴장감이 악보에서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1악장을 세 부분으로 나누면 중간 부분에 '안단티노'라고 기보되어 있습니다. 안단테가 느리게 연주하라는 의미라면 안단티노는 그보다 조금 덜 느린 정도입니다. 이 부분에 '에스프레시보'와 '돌렌테'라는 나타냄말이 함께 쓰여 있는데, 돌렌테는 고통스럽게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구소련의 정세를 직접적으로 담아낸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아이들이 학대당하고 총대를 메는 것을 보며 프로코피에프가 느꼈던 고통이 이 악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2악장 — 전쟁 속에서 꾸는 평화의 꿈
2악장의 첫 부분은 1악장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나타냄말도 아름답고 부드럽게 연주하라고 요구합니다. 전쟁 상황이라고 해서 위험한 순간만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잠깐의 여유가 있고, 사람들이 평화로운 일상을 그리워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그런 느낌입니다. 많은 음악학자들도 그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악장이 끝나는 부분은 조금 음산한 분위기로 바뀝니다. 아시아에서는 많이 들어보지 못한 느낌인데, 프로코피에프의 작곡 기법 때문입니다. 유독 어느 한 음을 계속 반복해서 들려주는데 듣다 보면 중독성이 생깁니다. 전쟁에서 패전한 군인이 집으로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처럼 느껴집니다. 힘도 다하고 정신적으로 지쳐서 터벅터벅 걷는 그 느낌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부분을 피아노로 연주할 때 다른 코드나 베이스도 계속 나옵니다. 프로코피에프가 '이 음을 조금 강조해서 치시오' 정도가 아니라 '이 음들을 아예 악상기호로 크게 쳐라'라고 기보했습니다. 다른 부분은 아주 여리게, 터벅터벅 걷는 느낌의 음은 포르테에 가깝게 연주하라고 지시합니다. 주로 러시아 작곡가들이 특별한 한 음이나 두 음 정도를 반복해서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프로코피에프가 그 방식을 가장 강렬하게 사용한 작곡가 중 한 명입니다.
3악장 —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리듬
3악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템포로 악보에서 박자의 흔들림 없이 그 리듬을 끝까지 고수하라고 지시합니다. 이것이 프로코피에프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악장에서 독특한 리듬이 나오는데, 얼핏 들으면 탱고와 약간 비슷한 느낌도 있습니다.
프로코피에프는 피아노의 타악기적인 요소를 크게 부각시키고 싶었던 작곡가입니다. 타현악기인 피아노의 타악기적인 요소를 잘 살려 음악사에서 유명한 작곡가로 남았습니다. 고전주의의 전형인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기본적인 양식을 바탕으로 하되, 자신만의 스타일로 다시 만들어낸 것이 프로코피에프 소나타의 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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