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음악의 뿌리는 이탈리아에 있습니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에서 출발한 이 흐름은 기악보다 성악 쪽에서 먼저 꽃을 피웠고, 오라토리오와 칸타타 같은 종교음악으로 가지를 뻗어나갔습니다. 바로크 음악이 이후 서양 음악 전체의 뼈대가 됐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이 시대가 음악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분기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후기에는 바흐, 헨델, 비발디라는 걸출한 인물들이 한꺼번에 등장했고, 이들이 완성한 음악은 지금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교본으로 남아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바흐가 독일 작곡가라는 점입니다. 당시 음악의 중심은 이탈리아였는데, 뮌헨 인근의 뉘른베르크에서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이탈리아 음악이 독일 남부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흐름 한가운데서 궁중음악가로 일하던 바흐가 이탈리아 음악을 흡수하고 독일적인 방식으로 발전시킨 것이죠.
인벤션이란 - 발명하고 발견하는 음악
바흐의 〈인벤션〉은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반드시 거치게 되는 악보입니다. 원래 30곡짜리 소품 모음집인데, 한 목소리가 아닌 두 개, 세 개, 많게는 네 개에 가까운 성부가 동시에 움직이는 구조입니다. 곡마다 길이가 짧고 규모도 크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음악적 밀도는 만만치 않습니다.
인벤션이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에서 왔는데,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모두 발음과 뜻이 비슷합니다. '발명하다, 발견하다'는 의미입니다. 악보를 들여다보면 이 이름이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바흐는 건반악기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탐구하는 방식으로 이 곡들을 썼습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1번부터 15번까지가 인벤션이고, 16번부터 30번까지는 심포니아입니다. 원본 악보에는 이 구분이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다만 한국에서 출판된 악보들은 30곡을 묶어 인벤션으로 통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악적 구조는 두 파트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 바흐의 인벤션 |
인벤션 1번 - 거인의 발걸음 같은 베이스
1번은 다장조로 쓰인 곡으로, 기술적으로 접근하기 비교적 쉬운 편에 속합니다. 이 곡의 핵심은 오른손 멜로디가 아니라 왼손 베이스입니다. 바흐가 사용한 통주저음 기법, 즉 저음부를 음악의 중심축으로 놓고 그 위에 다른 성부를 쌓아 올리는 방식이 이 곡에서 두드러집니다.
귀로 들을 때 먼저 잡히는 건 오른손의 흐르는 선율이지만, 실제로 곡 전체를 떠받치는 건 왼손입니다. 왼손 베이스에 집중해서 들어보면 묵직하고 규칙적인 발걸음, 거인이 천천히 걸어가는 듯한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작곡에서 베이스음을 먼저 잡고 그 위에 음을 쌓아가는 방법은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기법입니다. 건축으로 치면 지반 공사와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초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것처럼, 음악에서도 귀에 덜 들리는 베이스가 전체 구조를 떠받칩니다.
챔발로와 트릴 - 악기의 한계가 만들어낸 표현
이 곡 뒷부분에는 지속음이 자주 나옵니다. 현대 피아노는 해머로 현을 쳐서 울림을 만드는 구조지만, 바흐 시대에는 피아노가 없었습니다. 바흐가 연주하던 악기는 챔발로였는데, 이 악기는 가야금처럼 현을 뜯어 소리를 내는 방식이라 울림이 짧고 강약 조절도 어려웠습니다.
음을 길게 지속해야 하는 구간에서 챔발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트릴, 즉 인접한 두 음을 빠르게 번갈아 치는 기법을 활용해 음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효과를 냈습니다. 당시 긴 음이나 지속음이 필요한 자리에서 트릴은 거의 필수적인 해결책이었습니다. 지금 바흐 악보에 트릴 표기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인벤션 14번과 마림바
14번은 1번보다 한결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곡입니다. 바흐의 인벤션은 피아노 외에 마림바로도 즐겨 연주됩니다. 마림바는 피아노보다 큰 타악기로, 장미나무 등 단단한 나무로 만든 말렛에 실을 감아 음판을 치는 방식입니다. 음역대가 인벤션과 잘 맞고 음색이 따뜻하면서도 맑아서 잘 어울립니다.
오른손의 밝고 생기 있는 멜로디가 귀에 먼저 들어오지만, 통주저음으로 흐르는 왼손 베이스가 없으면 음악 전체의 구조가 무너집니다. 화려해 보이는 위쪽 선율이 아니라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아래쪽 베이스가 이 음악의 진짜 중심이라는 점은 바로크 후기 바흐 작품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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