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은 수많은 사과를 그리며 회화의 본질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럼 회화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회화를 회화가 되도록 하는 요소는 미술가나 비평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내어질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20세기 모더니즘을 특징짓던 핵심 요소였습니다. 오늘은 회화의 본질을 찾고자 하던 세잔의 작품을 살펴보며 회화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그가 현대 미술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물, 제라늄과 과일들
정물, 제라늄과 과일들에는 테이블 위에 사과 여러 개가 놓여 있습니다. 그럼 사과를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이중에 딱 하나만 사과를 고르라고 한다면 어떤 사과를 고르겠습니까? 또 그 이유를 말할 수 있습니까?
이 그림에 있는 사과는 모두 다른 모양과 형태입니다. 동일한 사과가 하나도 없죠. 어떤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 모두에게 하나하나 조명이 비추듯, 이곳에 있는 사과들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세잔의 사과를 보면 외곽선이 강조됩니다. 동그란 구 모양 보다 왠지 약간 원통 모양인 느낌이 듭니다. 왜 이런 느낌이 드냐면 세잔이 색채를 사용하는 방법이 일반적인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빨간색을 칠하고 명암을 달리 하지만, 세잔의 사과는 노란색부터 진한 갈색에 이르기까지 매우 입체적이고 단단한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모양 위에 그냥 색채를 칠하기보다는 형태 그 자체를 이룹니다. 과장된 질감, 명암은 없지만, 진짜 사과같은 모습을 보여주죠.
| 세잔의 정물, 제라늄과 과일들 |
사과가 있는 정물
또 다른 세잔의 작품을 보겠습니다. 사과가 있는 정물입니다. 그런데 이곳 사과가 놓인 접시와 물병이 왠지 약간 어색해 보입니다. 자세히 보면 접시는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고, 물병은 비슷한 눈높이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테이블의 사각형도 왠지 일그러져 있습니다. 테이블의 뒷부분을 보면 가장자리에 사과를 담은 초록색 접시가 있는데 떨어질듯이 위태롭습니다. 접시가 놓일 공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이는 이유는 원근법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접시의 시점이 다른 것처럼 테이블의 시점도 조금씩 달라진 것이죠. 정지된 시점에서 한 쪽에서 바라본 그림을 그린것이 아니라 정물 주변을 돌아보며 여러 시점에서 그림을 그린듯 합니다. 화가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그림을 하나의 화면에 그린다는 것은 놀라운 조형적 발견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세잔, 사과가 있는 정물 |
3차원인 대상을 평면에 그리다
세잔은 3차원인 대상을 평면에 그리는 것을 탐구하였습니다. 원근법이나 명암으로 그리는 것이 아닌 입체 자체를 평면에 옮기고자 한 것입니다. 이렇게 3차원 공간을 화면에 재현하고자 했던 시도는 평면에 시간성을 부여하며 가능해졌습니다. 세잔은 위치를 차지하는 장소와 움직임이 가능한 시간을 결합하여 새로운 공간의 본질을 나타내는 새로운 조형적 실험을 완성하였습니다. 이런 세잔의 실험은 나중에 입체파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모더니즘 회화에서 세잔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바구니가 있는 정물
세잔의 작품 바구니가 있는 정물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자세히 보면 한 지점이 아닌 사방에서 그려진것을 알수 있습니다. 과일, 주전자, 바구니 모두 둥근 형태이며, 사물 하나하나가 매우 견고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부얶의 한 가운데 테이블이 있고, 이를 돌아보며 정물을 관찰하고 있는 세잔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뒷쪽의 의자도 있습니다. 이 의자를 그릴 떄에는 자리를 옮겨 그 앞에서 그린 것 같습니다. 1점 소실점의 원근법으로 나타냈다면 의자는 훨씬 작게 그려져야 했을 것입니다. 이렇듯 다양한 위치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그렸지만 혼란스럽거나 어지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견고한 짜임새를 가진 구조물 느낌이 드는데, 이게 세잔의 힘인듯 합니다.
| 세잔, 바구니가 있는 정물 |
해골이 있는 정물
세잔의 작품 중 주제적 측면을 나타내는 그림도 있습니다. 해골이 있는 정물이라는 그림입니다. 해골은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합니다. 인생 말년에 왜 세잔은 해골을 자신의 그림에 등장시켰을까요? 당시 세잔은 어려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법률가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의 뜻을 거른채 화가가 되서 전혀 후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잔은 당시 화단에서도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세잔은 20여년동안 고독한 탐구를 자신의 화실에서 계속했던 것이죠.
| 세잔, 해골이 있는 정물 |
마치며
미술가들은 그림 속에서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고, 기본적인 조형 요소를 찾고자 했던 세잔의 시도로 추상화가 발전했다고 평가합니다. 세잔은 가장 평범한 소재로 모더니즘 회화의 근간을 마련했다고 평가받습니다. 대상을 보는 화가의 시점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 세잔, 이후 미술에서는 작가의 생각이나 개념을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가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이런 실험 정신은 현대 회화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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