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즉흥환상곡 — 순간의 마법이 담긴 올림 다단조

쇼팽 음악 중에서 유독 한국 사람들에게 오래 사랑받은 곡이 있습니다. 바로 〈즉흥환상곡〉입니다. 즉흥환상곡이라고도 하고 환상즉흥곡이라고도 하는데 단어 순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즉흥적인 면과 환상적인 면이 공존하는 곡입니다. 특히 중간 부분에 나오는 쇼팽 특유의 서정적인 멜로디 때문에 한때 우리나라에서 정말 많이 연주됐습니다. 저도 처음 이 멜로디를 들었을 때 이게 클래식 곡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이 곡은 쇼팽이 창작 활동을 활발히 하던 20대 중반인 1834년에 작곡했습니다. 

쇼팽-즉흥환상곡
쇼팽 즉흥환상곡




즉흥이란 무엇인가 — 재즈와 클래식 사이 

일상에서 즉흥이라고 하면 계획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느끼는 감흥이나 기분을 의미합니다. 음악에서도 연주자의 감흥에 따라 요소를 가미하는 것을 말합니다. 음악에서 즉흥이라는 단어는 재즈에 많이 쓰입니다. 환상곡은 작곡가나 연주자가 떠오르는 악상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베토벤도 그랬지만 당시에 쇼팽은 유명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고, 즉흥연주의 대가였습니다. 프랑스에서 살롱음악이나 하우스 콘서트 같은 음악 활동을 할 때 쇼팽의 저력은 엄청났다고 합니다. 악상이 떠오르면 온종일 연주를 하고 그 연주가 끝나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팬이 되었다고 합니다. 쇼팽의 연주를 두 번 들으면 후원자가 됐을 정도로 즉흥연주의 달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즉흥연주라는 게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올림 다단조 — 화려한데 우울하다 

쇼팽의 즉흥환상곡 Op.66의 중심 조성은 올림 다단조입니다. 이 곡에는 쇼팽 특유의 화려함이 담겨 있지만, 사실은 굉장히 우울한 코드입니다. 단조는 코드 안에서 88개의 건반을 펼쳤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템포가 빠르고, 화려한 부분도 모두 올림 다단조로 연주됩니다. 

이 곡의 악보는 출판된 책마다 음표가 조금씩 다릅니다. 후세 연주자들에게 하나의 연주 과제로 남아있는데, 이 곡을 풀어나가는 요소에서 쇼팽 특유의 천재성이 보입니다. 흔히 재즈 연주자들이 하나의 코드를 가지고 몇 마디씩 즉흥적으로 연주하곤 하는데, 이 곡은 분명 쇼팽이 연주를 했을지는 몰라도 본인이 기보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후세 사람들이나 음악 연구자들이나 쇼팽의 제자들이 쇼팽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출판 관계자와 함께 출판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곡은 쇼팽이 25살 때쯤 작곡했는데, 바로 출판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출판업이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지타토 — 격정적으로, 그러다 갑자기 서정으로 악보에 

기보된 나타냄말 '아지타토(agitato)' 부분이 끝나면 느린 템포와 익숙한 멜로디의 선율이 이어집니다. 거의 반전처럼 격정적으로 연주하다가 갑자기 다이내믹도 작아지고 서정적인 선율이 드러납니다. 처음에 올림 다단조로 격정적으로 연주하던 부분에서 음 하나가 바뀌어 밝은 올림 다장조가 된 것입니다. 

밝은 올림 다장조는 지금도 교회 음악에서 많이 쓰이는 코드입니다. 실제로 유명하거나 실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작곡가들의 곡은 단순한 코드로 작곡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 밝은 올림 다장조 다음에 이어지는 조성은 다시 첫 부분과 동일한 올림 다단조입니다. 재현부입니다. 




재현부 — 90% 같지만 조금 다르다 

재현부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쇼팽 특유의 천재성이 드러납니다. 장조에서 단조로 코드가 아주 자연스럽고 단순하게 바뀝니다. 재현부는 첫 부분을 다시 연주하는 것으로, 실제로 앞부분과 90% 정도는 똑같습니다. 완전히 똑같으면 작곡가들 사이에서 신경 쓰지 않고 대충 작곡했다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조금 다르게 작곡하는 것이죠. 앞부분에서 부드러운 선율로 연주했다면 재현부에서는 조금 더 격정적으로 연주하다가 아주 고요하게 끝납니다. 악보에도 '트란퀼로(tranquillo)'라는 나타냄말이 기보되어 있습니다. 아주 고요하게 끝내라는 의미입니다. 재현부는 올림 다단조로 시작하여 마지막에는 장조로 끝납니다. 이 곡의 중심 조성이 올림 다단조인 것이죠. 

 



즉흥곡 1, 2, 3과 다른 즉흥환상곡 

작곡가들이 즉흥곡과 환상곡을 따로 작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쇼팽의 즉흥곡 1, 2, 3, 4에서 네 번째 곡이 〈즉흥환상곡〉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귀에 익숙한 멜로디를 넣어서 조금 더 환상적인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즉흥환상곡〉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즉흥곡 1, 2, 3은 즉흥곡 4와 느낌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네 곡을 순서대로 들어보면 쇼팽이 즉흥곡이라는 형식 안에서 얼마나 다양한 색깔을 뽑아냈는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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