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이 드뷔시 곡 앞에서 유독 당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일 음악처럼 구조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으니까요. "이 곡 어떻게 쳐야 해요?"라고 물어오면 저는 항상 "먼저 눈 감고 한 번 들어봐"라고 합니다. 드뷔시는 악보를 분석하기 전에 느끼는 것이 먼저인 작곡가입니다.
| 드뷔시 |
아라베스크란 무엇인가 — 꽃 장식에서 음악으로
아라베스크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베스크를 빼면 아랍이라는 말이 남습니다. 대개 아랍 지역의 건물 벽면이나 공예품에 그려진 화려하고 다양한 색의 꽃 장식을 아라베스크풍이라고 합니다. 음악에서는 환상적이고 장식이 많은 곡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용어 자체가 음악보다 미술에서 약 10에서 20년 정도 먼저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앞서 인상주의 이야기에서도 그랬듯이 드뷔시는 미술과 음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작곡가였습니다.
드뷔시가 개발한 온음계 — 하프소리처럼 들리는 이유
드뷔시가 개발한 새로운 음계가 있습니다. 전문 용어로 온음계라고 하는데, 내가 친 건반을 포함해서 차례대로 세 번째 음을 의미합니다. 도를 치면 세 번째 건반이 레가 되고, 레를 치면 미, 미를 치면 파샵, 이어서 솔샵이 됩니다. 이것이 드뷔시가 작곡할 때 기본 틀로 삼았던 온음계입니다.
이 음계로 피아노를 연주하면 마치 하프 소리처럼 들립니다. 음계를 따라 연주하기만 해도 이미 드뷔시 특유의 색깔이 납니다. 드뷔시는 이 온음계로 피아노곡과 오케스트라곡 등 수많은 곡을 작곡했습니다. 처음 이 음계를 이해하고 나서 〈달빛〉을 다시 들었을 때 곡의 느낌이 어디서 오는 건지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드뷔시 vs 라벨 — 왜 드뷔시가 더 기억되는가
드뷔시보다 조금 후세의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드뷔시와 라이벌 관계로 자주 비교됩니다. 라벨은 당시 최고로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고 연주도 세련되고 화려했습니다. 기술적으로만 보면 라벨이 드뷔시보다 앞선 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드뷔시가 음악사에서 더 결정적인 이름으로 남은 이유는 인상주의 음악의 시초이자 완성자이기 때문입니다. 미술에서 인상주의 사조를 차용해 음악으로 표현한 첫 번째 사람이 드뷔시였고, 그것을 하나의 완결된 언어로 만들어냈습니다. 드뷔시를 계기로 인상주의 음악이 190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이탈리아의 레스피기,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스크라빈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두 개의 아라베스크〉 — 정의할 수 없어서 더 아름다운 곡
1888년에 작곡된 〈두 개의 아라베스크〉는 드뷔시의 초기 작품으로 인상주의의 색채가 진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드뷔시 특유의 온음계가 담긴 곡입니다. 인상주의는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이 곡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두 개의 아라베스크〉가 아라베스크의 전형적인 곡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화려하거나 다채로운 느낌보다는 마디마디에 드뷔시가 느꼈던 감정을 음표로 소소하게 풀어나간 곡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음악 이론에서 아라베스크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는 하나의 참고 기준일 뿐, 정답은 아닙니다. 결국 음악을 들으며 여러분이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감상하면 됩니다.
〈두 개의 아라베스크〉 연주할 때 주의할 것 — 루바토
전개 부분은 테크닉적으로 어렵다기보다 템포와 분위기를 잡는 것이 더 힘든 구간입니다. 악보에는 '루바토'라는 나타냄말이 기보되어 있는데,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늘렸다가 줄였다가 움직이는 방식입니다. 정확한 템포를 제시하지 않고 연주자가 스스로 만들어가라는 의미입니다.
마지막 부분은 첫 부분과 비슷하게 전개되다가 가장 마지막 4마디가 저음에서 고음으로 상승하며 부드럽게 끝납니다. 피아노의 테크닉이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해 연주했던 낭만주의 음악과는 결이 다릅니다. 절제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드뷔시가 보고 느낀 점을 그대로 피아노로 옮긴 것이지요. 서양 음악사에서 바로크의 바흐, 클래식의 모차르트, 클래식과 낭만주의 사이의 베토벤, 낭만주의의 드뷔시를 손꼽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드뷔시는 음악사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존재감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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