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자녀가 화가가 되겠다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미술에 대한 견해 뿐 아니라 미술가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도 대답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화가는 배고픈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는 요즈음, 많은 부모가 환영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화가들 가운데 부와 명예를 누린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자본주의 시대, 무명의 화가에서 팝스타로 부상하고 눈부신 성공을 거듭한 이래, 갑자기 44세의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죽은 잭슨 폴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또한 미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완전히 순수 추상으로 이동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잭슨 폴록의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잭슨 폴록은 누구일까?
잭슨 폭록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의 작품을 어려워하고,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사랑과 질시를 동시에 받은 작가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잭슨폭록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미술에 두각을 나타내었습니다. 이후 20대에는 지역주의적인 양식을 탐구하였고, 1940년에는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드쿠닝과 함께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이후 1943년에 개인 전시회를 열고 순식간에 스타 작가로 부상하였습니다. 잭슨 폴록의 작품 남성과 여성은 제목에서는 분명한 대상을 말하고 있지만 작품에서는 패턴이나 색채, 기호를 사용하여 상징화하였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눈같은 기호나 입, 얼굴을 연상시키는 형태가 사람을 떠올립니다.
잭슨 폴록의 열기 속의 눈
열기 속의 눈은 제목에서 나온 것처럼 열기 속에서 사물의 형태들이 녹아내리듯 보입니다. 뚜렷한 형태의 윤곽선은 보이지 않고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도 찾기 힘듭니다. 붓질이 겹겹히 칠해져 있는데, 그 곳에서 더욱 추상화된 표현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폴록의 초기 작품은 기하학적으로 단순화시키는 것 보다 내면의 느낌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표현주의의 성격을 띕니다. 이렇게 폴록의 추상화를 추상표현주의라고 합니다. 작품에 자동기술법 방식을 취해 무의식적으로 표현합니다. 자동기술법이란 작가들이 무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의식적 통제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초현실주의 회화에서 사용되는 기법입니다.
| 잭슨 폴록의 열기 속의 눈 |
추상화의 자동기술법
화가들은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사물의 질감이나 물감의 얼룩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리거나 꿈의 이미지를 사용하였습니다. 종이를 떨어뜨려 우연히 만들어지는 구상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약물을 복용한 상태로 작용을 하거나 일부러 며칠동안 잠을 자지 않은 채 작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시달린 폴록도 이런 자동기술법에 심취하였습니다. 폴록의 뿌리기 기법을 통한 액션 페인팅에도 이러한 자동기술법 속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초현실적인 성격을 가지며 추상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폴록의 작품은 젊은 작가임에도 구겐하임의 후원을 얻어내며 성공의 길을 걷게 됩니다.
20세기 초 유럽의 유명 작가들이 미국의 젊은 작가를 후원하는 것은 투기성이 짙은 투자였습니다. 그럼에도 구겐하임에서는 폴록을 성공시켰고, 현대 미술의 중심이 뉴욕으로 옮겨 왔습니다. 폴록의 첫번째 전시 도록에서는 그를 훈련되어 있지 않고, 폭발적이며 깔끔하지 않은, 예측 불가능한, 아직은 정제되어 있지 않은, 방탕하고 풍부한 등의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폴록은 자유롭고 새로운 미국 미술의 상징으로 선택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잭슨 폴록의 뿌리기 기법
잭슨 폴록의 뿌리기 기법은 1947년경 갑작스럽게 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기법을 통해 일약 팝스타에 오릅니다. 그의 액션 페인팅은 서구 유럽의 회화와 확실히 구별됩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선은 작품의 크기에서 차이가 납니다. 폴록은 작은 프레임의 회화를 거대한 화면 안에 폭발적으로 쏟아내었습니다. 또 다른 차이는 즉흥성입니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폴록은 6개월동안 빈 캔버스를 응시한 후, 하룻밤에 작품을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치밀한 계획이 아닌 순간의 행동과 즉흥성으로 완성한 것입니다. 또 다른 차이는 수평적인 접근입니다. 바닥에 놓인 화면은 어떤 위계가 없는 평면적이고 수평적인 공간입니다. 폴록은 전통의 굴레에서 벗어나 개방적이고 활동적인 에너지로 뉴욕미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폴록은 1947년부터 3년여간 뿌리기 기법을 통한 작품을 제작하였고,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갑자기 그만둔 뿌리기 기법
폴록은 그러나 1950년 경 갑자기 뿌리기 기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이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성공의 정점에서 그동안 자신을 스타덤으로 올려준 미술 형식을 갑자기 중단하고 벗어나려한 모습은 폴록의 독특한 면을 보여줍니다. 이후 폴록은 알코올 중독 증상이 심해졌고, 1956년 어느날 자동차 사고로 인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마치며
2006년 폴록의 넘버 5이라는 작품은 1억 4천만 달러에 팔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화로 기록되었습니다.
| 잭슨 폴록의 넘버 5 |
순수하고 본질적인 예술의 원형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그의 추상회화는 엄청나게 값비싼 재화가 되었습니다. 폴록의 삶과 작품에서 보는 것처럼 예술에도 여러가지 복잡한 역학관계가 있습니다. 순수한 창조성으로 현대 미술을 설명하기는 힘이 듭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논리만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자본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그만의 미적가치로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뇌리에 그만큼 남게 되었다는 거겠죠. 잭슨 폴록의 작품을 통해 우리 현대사회에서 미술을 어떻게 인식하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살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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