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슈만은 1810년생으로, 쇼팽, 리스트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입니다. 평생 독일을 거의 벗어나지 않은 독일 작곡가인데, 8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고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슈만의 아버지는 아들을 연주회에 자주 데리고 다니고 연주회를 직접 열어줄 정도로 열정적으로 후원했습니다. 슈만 초상화를 보면 악기 앞에 앉아 있는 모습보다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더 많은데, 어릴 때부터 아버지 서재에서 살다시피 하며 피아노만큼 책 읽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슈만이 11세 즈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예전부터 바라던 법률 공부를 슈만에게 강요했습니다. 슈만은 어머니 뜻을 따라 법대로 유명한 하이델베르크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본디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되면 갈망이 커지는 법이죠. 저도 좋아하는 것을 억지로 못 하게 되면 오히려 더 하고 싶어지는 경험이 있는데, 슈만도 딱 그랬던 것 같습니다. 결국 입학한 지 3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음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음악을 못 했던 만큼 열정이 넘쳤고, 2~3년 사이에 작곡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초창기에는 피아노곡을 많이 썼는데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연습을 너무 무리하게 한 탓인지 손 신경에 문제가 생겨 마비가 됩니다. 그 후 슈만은 작곡에 더 몰두하게 됐다고 합니다.
어린이 정경 — 13개의 소품이 담은 어린 시절
로베르트 슈만의 〈어린이 정경〉은 총 13개의 소품을 모은 모음곡입니다.
첫 번째 곡은 〈미지의 나라〉로 악보가 한 페이지 정도인 작은 곡입니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제목 때문인지 어린이의 환상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곡 〈이상한 이야기〉는 첫 번째 곡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멜로디도 특이하고, 슈만이 3/4박자인 이 곡의 리듬을 마디별로 묶지 않고 뛰어넘었습니다. 우리가 배운 4분의 3박자의 기본 리듬은 강약약인데, 슈만이 악보에 표기한 리듬은 약강약입니다. 약강약을 한 번에 묶었지만 마치 강약약처럼 들립니다. 슈만은 리듬의 차이로 음악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어렸을 때 음악을 구조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연주했던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칭얼거리는 아이들, 그리고 행진
네 번째 곡의 제목은 한국어로 '칭얼거리고 조르는 아이들'이라는 뜻입니다. 제목만 봤을 때는 시끄럽고 방정맞을 것 같은데, 멜로디를 들어보면 독일과 한국 아이들이 칭얼대는 느낌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취미로 피아노를 치면서 이 곡을 처음 연주해봤을 때 제목과 실제 멜로디 사이의 간극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다음에 나오는 〈중요한 사건〉이라는 곡은 행진하는 느낌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소품들과는 또 다른 결입니다. 무언가 큰 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음향이 커지고, 각 음마다 강한 악센트가 있습니다. 조금 더 긴장되고 감정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꿈 — 어린이 정경의 중심
일곱 번째 곡은 피아노를 배운 사람이라면 대부분 한 번쯤 연습해봤을 정도로 잘 알려진 곡입니다. 제목은 〈꿈(Träumerei)〉입니다. 아이가 자고 있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잠든 아이가 꿈꾸며 느낀 감정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슈만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썼다고 하는데, 잠을 자고 꿈을 꾸던 일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기억에 남아 영감을 받은 것 같습니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이렇게 단순한 멜로디가 왜 이렇게 마음에 남는지 신기했습니다. 지금도 피아노 앞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곡이에요.
소품 〈꿈〉은 〈어린이 정경〉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곡이고, 가장 많이 사랑받는 곡입니다. 〈어린이 정경〉이 슈만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됐기 때문에 10세 전후인 아이들이 잘 표현합니다. 반면에 노련한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할 때도 그 맛이 괜찮습니다. 이 이중성이 〈꿈〉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곡 — 시인의 이야기
마지막 열세 번째 곡의 제목은 〈시인의 이야기〉입니다. 열두 번째 곡까지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거나 추억한 이야기들을 표현했다면, 열세 번째에서는 현실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현재의 자신을 시인으로 표현하며 앞서 연주한 옛날 이야기와 추억을 정리해서 다시 한 번 이야기하는 느낌입니다. 잔잔하고 조금 철학적인 분위기입니다. 마지막 부분은 더 잔잔하고 고요하며, 저음으로 내려지다가 마무리됩니다.
이 곡은 전체적으로 피아노곡이라기보다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슈만은 음악가로서 초창기인 20대에 인생을 회상하면서 작곡할 정도로 영감이 풍부했던 것 같습니다. 슈만의 피아노곡은 슈만의 색깔과 슈만만의 구조가 많이 묻어납니다. 〈어린이 정경〉 또한 슈만의 색이 짙게 남아 있는 곡입니다.
| 로베르트 슈만(1810-18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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