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이라고 하면 대부분 쇼팽을 떠올립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그런데 녹턴이라는 장르 자체를 만들어낸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영국의 작곡가 존 필드입니다. 유럽 음악사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었는데,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지휘자 김대진 선생님이 존 필드의 녹턴을 국내에 알리면서 지금은 많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녹턴은 보통 야상곡이라고도 부릅니다. 밤에 듣기 좋은 음악이라는 뜻이죠. 과시적이거나 드라마틱한 곡이 아니라, 잔잔하고 살롱 분위기에 어울리는 간결하면서도 감미로운 곡입니다. 취미로 피아노를 치다 보면 이런 조용한 곡이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지는 때가 있는데, 존 필드의 녹턴이 딱 그런 곡입니다.
| 존 필드(1782-1837) |
클레멘티의 제자, 다재다능한 음악가
존 필드는 당시 이탈리아의 유명한 음악가 무치오 클레멘티의 수제자였습니다. 특이한 점은 클레멘티가 운영하던 피아노 제작사에서 무보수로 테스트 플레이어로 일하며 클레멘티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는 겁니다. 지금으로 치면 인턴으로 일하면서 최고의 스승에게 배운 셈이죠.
존 필드는 스승을 따라 피아노 제작자, 작곡가,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피아노 영업도 했습니다. 예전 음악가들은 이렇게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사람이 훌륭한 지휘자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처럼요.
낭만주의의 진짜 시작점
존 필드는 1782년에 태어났습니다. 베토벤보다 12년 뒤고, 낭만주의 시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슈베르트보다는 15년 정도 앞섭니다. 베토벤이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잇는 중요한 작곡가라면, 슈베르트는 낭만주의의 초기를 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존 필드는 진정한 낭만주의의 시초가 아닐까 싶습니다.
낭만주의 음악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 이해하면 됩니다. 고전주의가 철저한 구조 안에서 절제된 음악을 추구했다면, 낭만주의는 구조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작곡가나 연주자 자신만의 스타일을 더 부각시키는 방향입니다. 좀 더 화려하고 낭만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멜로디 라인에 공을 들이는 시대 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존 필드로 인해 낭만주의 시대에 영국 옆 나라인 프랑스, 폴란드, 독일에서도 녹턴을 많이 작곡하게 됐습니다. 실제로 그의 녹턴을 들어보면 녹턴이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잔잔한 음악입니다. 어찌 보면 쇼팽보다 훨씬 더 간결명료하면서 밤에 듣는 음악의 느낌을 잘 표현한 곡인 것 같습니다.
존 필드 녹턴 11번 — 돌렌테의 의미
존 필드의 녹턴 중 한 곡은 왼손 연주가 쇼팽의 녹턴과 거의 흡사합니다. 음정에서 베이스가 내려간 정도의 차이만 있고, 왼손 반주는 쇼팽과 닮아 있습니다. 쇼팽이 존 필드와 거의 흡사하게 작곡한 것이죠. 오른손 멜로디도 비슷합니다. 두 곡을 나란히 들어보면 누가 원조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녹턴 11번은 단조이고, 템포도 '아다지오'로 안단테보다 더 느리게 연주하도록 기보되어 있습니다. '돌렌테'라는 나타냄말이 표기되어 있는데, 당시에는 많이 쓰이는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러시아 음악에서 많이 쓰이는 나타냄말로, 조금 고통스럽게 연주하라는 의미입니다. 후기 낭만주의나 인상주의 곡의 돌렌테와는 분명히 다른 느낌입니다. 러시아적인 암울하고 침울한 분위기가 아니라, 소소한 감정에서 고통스러운 정도의 표현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왼손 연주는 피아니시모로 기보되어 있습니다. 왼손은 아주 작게, 오른손은 생각보다 더 극단적으로 크게 연주하라는 의미입니다. 취미로 피아노를 치다 보면 이 밸런스 조절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피아니스트들은 열 손가락으로 멜로디, 반주, 화음을 한 번에 처리해야 하니까요. 여러 음의 밸런스를 항상 염두에 두고 연주해야 하는 고충이 있지만, 그 밸런스가 잘 맞아떨어질 때 나오는 선율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리트 오네 포르테라 — 가사 없이 노래하다
존 필드의 녹턴 중 '리트 오네 포르테라'라는 부제가 붙은 곡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무언가'입니다. 가사가 없는 음악, 즉 멜로디만 있는 곡입니다. 독일 작곡가 멘델스존도 무언가를 작곡했고, 러시아 작곡가들은 가사 없는 음악을 보칼리제라고도 합니다. 보컬이 없다는 뜻이죠. 그런데 보칼리제는 조금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곡들은 성악곡으로 작곡했을 때 가사는 없지만 발성은 있기 때문에 '아'로 발성합니다. 가사가 없다 보니 악기로 편곡하기가 쉽고, 후세에 시인이나 작사자가 가사를 붙여서 편곡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곡의 템포는 '렌토'로 아주 느리게 연주됩니다. 여기에도 돌렌테가 기보되어 있습니다. 가사는 없지만 감정에 소소한 고통을 담아 실제로 노래하듯 연주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가사 없이도 충분히 무언가를 전달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좋은 음악은 언어가 필요 없다는 말이 이런 곡에서 실감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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